도서관에서..
시계에 관한 생각들이 정리 되면서 하릴없이 집으로 와버렸다
시험 2일전,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 보다. could't help it. it was like an epiphany.
그렇게, 시계 분류의 첫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일랜드의 작가 Jonathan Swift의 <The Guliver's Travels, 1726>에서
걸리버가 첫 여행에서 표류 했을 때, Liliput의 사람들이 그의 소지품들을 압수하였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중 그의 회중시계를 본 신하가 릴리풋 왕에게 보고하기를,

삽화, 미로 윈터(1886-1956)
"이 물건은 그들의 신이거나 신의 상징인 듯합니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하루에도 몇번씩 멈춰서서 바라보니까요."
걸리버 여행기가 풍자소설이며 자연과학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상 깊은 부분이다.
도시의 삶을 벗어나 상상 해 보면, 현실에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12시나 45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의 관념으로 구획을 그어 놓고 그 관념을 공유할 뿐이다. 실존의 문제에 있어서 반실재론적 견해이다. 아마존의 원시부족 조에족 사람들은 하나 둘정도 까지 세고 세개 이상되면 그냥 많다고 이야기한다. 수학에서 무한이란 개념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성립될 수 있는 이론과 아닌 이론이 있다. 더 나아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지 않는 세계를 생각 해 볼때 의자들을 두 개 라고 셀 수가 없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 세계에서는 2란 숫자의 의미가 약해 진다.
셋 이상을 세지 못하는 원시 부족은 진화하지 못 한 것이며 그들을 교육하려면 생물학적인 진화가 있은 후에나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었다. 그들은 원시 부족의 한 사람에게 다가가 (이틀 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안나) "저 고개 넘어 샘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겐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하자. 하루에 4그루의 나무를 벨 수 있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반정도만 벨 수 있다고 한다. 하루에 부자가 벨 수 있는 나무는 얼마게? (대강이런 질문)" 라고 물었는데 원시부족은 대답은 커녕 전혀 이해를 할 수 가 없다는 의사를 표했고, 어딘가에서 바이블을 들이대고 왔을 것 같은 이 실험자는 그러한 가설을 증명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험은 잘못 설계되었다. 숫자를 넘어서 가상이라는 것이 전무한 생활환경의 사람이 가정을 포함한 정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도시에서 오늘 태양의 남중고도가 얼마인지를 묻는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시간이란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관념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한테 타임머신 얘기하면 화살 한방에 가는 수가 있다
MBC 창사특집 타큐, <아마존의 눈물 中>
놀라라. 이건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교통수단이 발달 하기 전에는 많은 달력과 많은 시간체계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같은 시각을 쓴다. 그 이름 GMT. 지쟈쓰도 통일하지 못한 전세계를.
큭....큭....큭....
또한 인간은 전 인류가 공유하는 시간이란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이에 쏟아내었고 지금 21세기에는 아주 정확한 시계들이 많은 사람들의 손목에 그리고 방안의 벽에 걸쳐있다. 일본의 노천탕에서 만난 스위스산 카메라 아저씨는 스위스 시계 회사들이 쓸데 없는데 집착한다고 비난했다. 중국에 주문하면 일주일만에 100개든 1000개든 비행기타고 올 수 있는 부품 하나를 만드는데 장인이 하루에 세 개씩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큰 폭의 이윤에 집중하지 않고도 나도 살 수 있는 정도의 가격으로 좋은 시계를 열심히 만들어 주는 장인에게 감사하고 있다.
'도요타가 그런 식으로 부품 수급해서 자동차 산업 최초의 대규모 리콜을 한게 아닐까'

시계가 무엇보다 매력있는 점은 본질적으로 인간화, 다시 비관념화 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어떠한 기술이든 시계는 인간 존재의 현실을 고려하도록 만들어지기 힘들다. 인간은 감정에 따라 행동에따라 심지어는 나이에 따라서 시간을 달리 느끼는데 시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좋으면 시간이 빨리가고 싫으면 시간이 천천히 간다. 좋은 일을 기다리면 시간이 느리게 가고, 싫은 일을 기다리면 시간이 빨리간다. (이를 얼마간 반영할 수도 있는 시계가 오토매틱일텐데, 이 때문에 쿼츠에 뻥 차였던 오토매틱을 사람들이 최근에 더 원하게 되는걸까?)
애플사가 시계 산업에 뛰어든다고 해도 글쎄.. 우리는 기본적으로 시계로부터 정확성을 원한다.
극한의 추위 극한의 더위 또는 심해에서 인간은 감정에 휩싸이고 정확해지기 힘들다. 하지만 시계는 이러한 인간의 상대성과는 다르게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믿게 해 준다. 다시 표현하자면 현실에 존재하는 절대 관념의 상징인 것이다. 충분히 이성적일 수 없는 나는 이 기계로부터 차가운 절대이성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Seven(1995)에서 밀스보다는 소머셋을 멋지다고 말하는 인간은 시계또한 멋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거다.
"시계는 얼마간, 물질이면서 관념이기 때문이다."
공유 관념에 의한 공동의 지배 체계. 이성으로 만든 감성의 매트릭스. Haans Hake의 감시탑에서 볼 수 있는 판옵티콘의 역설등이 생각 났었는데 쓰다보니 정리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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