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와 세번째 욕구의 순서 결정에 짧고도 깊은 고민을 하였다.
별 의미 없는 글의 연속이나, 이후에
'아, 역시 나는 아주 일찍 이런 경험을 하였구나.'
라고 떠올릴 날짜를 확정짓기 위해 끄적여 본다
이런 경험인 즉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동시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일이다
최근 이런일이 계속 되고 있다
사람에 따라 내가 이른것이 전혀 아닐 수도있겠지만,
아, 식욕이 왕성할 때를 생각하면
5세때 처음으로 밥 네 공기를 먹고
초등학교 2학년 때에는 일가친척들이 모인 삼겹살 집에서
얼마를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간에 더먹겠다고
가게를 나가 동네 한바퀴를 돌고 와서 더먹었으며
고등학교 때 배달음식 정량이 치킨 두마리 또는 도미노피자 트리플 치즈크러스트(L사이즈밖에 없음) 피자 한 판 이어서 가계부의 숫자 기록에 큰 기여를 한 위인이었는데
오, 어머니 제 나이 27세에 '입맛 없다'는 말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저를 보시고 삼겹살 집을 운영하지 않은게 다행이라 하시던 어머니, 이제 그런 걱정은 쓸데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웃기진 않은데, 추억이 새록새록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아는 극한의 고통' 이라는 말을 책에서 읽었는데 그 고통의 반대격인 이 고통은 극한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점이 많다.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위가 비어 있으면 기운이 없고 복부를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은 약한 고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야 음식을 넣어줄 테니. 그런데 이전과 가장 다른 점은 그 어떤 음식 - 초호화부터 - 꽃등심 숯불구이, 도미 회, 육회, 구운 송이, 도살된지 24시간 이내의 소 간 .... 이렇게 써 보니 침은 좀 고이는데 어차피 이런 음식들은 지금 먹을 수 없어서 그런지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실현가능한 음식들을 나열해보면 어떨까.. 치킨, 피자, 삼겹살, 비빔밥, 볶음밥, 부대찌개, 순대국밥... 음 역시 아까보다는 별 감흥이 없어 침이 고이질 않는다.
아, 입에 무언가를 넣기가 이렇게 거추장스러울수가.
별 수 있나.
고시식당 가서 베어그릴스가 이틀째 지렁이만 먹고있다가 난데없이 조리된 음식을 발견 했을 때를 상상하며 허겁지겁 밀어넣어야겠다.
~ Bon Voyage ~
2011년 1월 28일 금요일
2011년 1월 16일 일요일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는데
2011년 1월 15일 토요일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찾아서
다른 나라들의 문화를 겉핥기로 아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만큼 부모와 자식 간의 끈이 질긴 나라도 드문 것 같다.
뱃속으로부터 나와서 살고 있어도
캥거루 처럼 아직 주머니에 들어간 채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일 때도 있다.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인류 보편적인 자손 번식과 번영의 의지는 다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수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질긴 것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얼마나 하드코어 했던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논리 처럼, 그렇게 해서 자식이 최대한 보호받아 강해질대로 강해진 후
너른 벌판에 던져지게 되고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게 되는 것이면 좋겠지만,
이 '강해진다는 것' 이 혼자되는 외로움을 돌보는 힘도 포함한 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외로움 앞에서 무력한건 인간이면 어느 지역, 어느 문화에서나 다 같을 것이다.
언제나 인용하듯이, 로빈슨 크루소는 윌슨이 없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다.
다만, 외로움을 돌보는 방법에 있어서 나, 이 한 몸뚱아리에 달린 눈알은 우리나라에서
다른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을 여럿 관찰하였다.
그리고 상호적인 사랑에 빠진 경우, 그 대상은 연인이 될 확률이 크다.
상호적이지 않은 사랑에 빠진 경우, 그 대상은 가족이거나 담배나 술이다.
특히 연인 사이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남자친구에게서 아빠의,
여자친구에게서 엄마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실제 부모에 대한 기대도 낮추어 지질 않아,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아무렇지 않은 말들을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낳고 길러준 사람이 아닌 이에게 기대를 걸고
그에 부응하여 주길 바라는 일은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
그저 서로를 염려해 주는 정도로 만족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Discovery Channel에서 Man vs. Wild를 진행했던 Bear Grylls는,
영국 특수전부대 복무 당시 야전에서 근무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나는 전역한지 2년 반 정도 되었지만, 아직도 군대 꿈을 꾸곤 한다.
악몽이라면 더 한 악몽이 많아 괴롭지는 않으나 스스로가 안쓰럽다.
누적 10회 정도 되는 것 같으니, 어지간히 군대가 싫었나보다.
군대가 싫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유의 박탈이겠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을 강화한 것은 몸이 너무 편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특수전사령부에서 근무했다면 지금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정신적으로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 언급한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사막, 무인도, 활화산, 밀림, 빙하지형 등 극한의 환경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생명을 유지하고 가능한 빨리 인문환경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실적으로 모험 중 길을 잃거나, 항공기가 추락하거나, 배가 난파되거나 할 경우에나
도움이 될만한 시나리오인데,
지난주까지 모든 에피소드를 다 봤다.
촬영팀이 따라 붙지만, 화면에는 항상 베어그릴스 혼자 있고,
밤에는 촬영팀은 따로 캠핑을 하거나 도시로 돌아가는 것 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여러명이 함께 조난을 당할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동하기 위해 태양을 이용하거나, 별자리를 이용하거나, 식물이나 지형을 활용하여
방향을 파악하고 여정을 결정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얼마나 탈수되어 있는지 스스로 체크하여
코끼리 똥을 짜서 마실 것인지, 안 마시고 죽을 것인지 결정해야하고
뗏목을 만들어 급류를 타고 이동하려 했는데 뗏목이 금세 부서졌을 때
다시 힘내서 뗏목을 만들든지 걸어가든지 스스로를 북돋아야 하는 것도 자신이다.
대부분의 지형에서 이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는 오전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벌레든 뭐든 먹고 출발해야 한다.
영양분 섭취가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불을 피우는 것은 체온유지, 야생동물들로 부터의 보호, 요리의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기를 올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부싯돌이 없으면 숙련된 베어 그릴스도 수십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는 불을 '만들 때' 언제든지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돌아보면, 혼자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나 스스로와 오롯이 대면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도 라이터나 부싯돌 없이, 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우리나라만큼 부모와 자식 간의 끈이 질긴 나라도 드문 것 같다.
뱃속으로부터 나와서 살고 있어도
캥거루 처럼 아직 주머니에 들어간 채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일 때도 있다.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인류 보편적인 자손 번식과 번영의 의지는 다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수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질긴 것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얼마나 하드코어 했던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논리 처럼, 그렇게 해서 자식이 최대한 보호받아 강해질대로 강해진 후
너른 벌판에 던져지게 되고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게 되는 것이면 좋겠지만,
이 '강해진다는 것' 이 혼자되는 외로움을 돌보는 힘도 포함한 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외로움 앞에서 무력한건 인간이면 어느 지역, 어느 문화에서나 다 같을 것이다.
언제나 인용하듯이, 로빈슨 크루소는 윌슨이 없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다.
다만, 외로움을 돌보는 방법에 있어서 나, 이 한 몸뚱아리에 달린 눈알은 우리나라에서
다른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을 여럿 관찰하였다.
그리고 상호적인 사랑에 빠진 경우, 그 대상은 연인이 될 확률이 크다.
상호적이지 않은 사랑에 빠진 경우, 그 대상은 가족이거나 담배나 술이다.
특히 연인 사이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남자친구에게서 아빠의,
여자친구에게서 엄마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실제 부모에 대한 기대도 낮추어 지질 않아,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아무렇지 않은 말들을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낳고 길러준 사람이 아닌 이에게 기대를 걸고
그에 부응하여 주길 바라는 일은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
그저 서로를 염려해 주는 정도로 만족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Discovery Channel에서 Man vs. Wild를 진행했던 Bear Grylls는,
영국 특수전부대 복무 당시 야전에서 근무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나는 전역한지 2년 반 정도 되었지만, 아직도 군대 꿈을 꾸곤 한다.
악몽이라면 더 한 악몽이 많아 괴롭지는 않으나 스스로가 안쓰럽다.
누적 10회 정도 되는 것 같으니, 어지간히 군대가 싫었나보다.
군대가 싫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유의 박탈이겠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을 강화한 것은 몸이 너무 편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특수전사령부에서 근무했다면 지금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정신적으로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 언급한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사막, 무인도, 활화산, 밀림, 빙하지형 등 극한의 환경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생명을 유지하고 가능한 빨리 인문환경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실적으로 모험 중 길을 잃거나, 항공기가 추락하거나, 배가 난파되거나 할 경우에나
도움이 될만한 시나리오인데,
지난주까지 모든 에피소드를 다 봤다.
촬영팀이 따라 붙지만, 화면에는 항상 베어그릴스 혼자 있고,
밤에는 촬영팀은 따로 캠핑을 하거나 도시로 돌아가는 것 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여러명이 함께 조난을 당할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동하기 위해 태양을 이용하거나, 별자리를 이용하거나, 식물이나 지형을 활용하여
방향을 파악하고 여정을 결정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얼마나 탈수되어 있는지 스스로 체크하여
코끼리 똥을 짜서 마실 것인지, 안 마시고 죽을 것인지 결정해야하고
뗏목을 만들어 급류를 타고 이동하려 했는데 뗏목이 금세 부서졌을 때
다시 힘내서 뗏목을 만들든지 걸어가든지 스스로를 북돋아야 하는 것도 자신이다.
대부분의 지형에서 이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는 오전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벌레든 뭐든 먹고 출발해야 한다.
영양분 섭취가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불을 피우는 것은 체온유지, 야생동물들로 부터의 보호, 요리의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기를 올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부싯돌이 없으면 숙련된 베어 그릴스도 수십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는 불을 '만들 때' 언제든지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돌아보면, 혼자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나 스스로와 오롯이 대면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도 라이터나 부싯돌 없이, 불을 '만들어' 보고 싶다.
2011년 1월 7일 금요일
황해, 나홍진
이 영화를 골드클래스에서 본 것은 잘못이었어
예쁘장한 아가씨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릎을 꿇은 채 스파클링 와인을 서빙했고
가소롭게도 까나페와 함께 코 때문에 고갤 들어야 하는 입구가 좁은 샴페인 잔을 기울이다가
영화가 시작되면서 극도의 이질감이 느껴졌지
사실 리뷰란걸 쓸 겨를도 없고 생각도 없었어
근데 허지웅씨가 한겨례에 기고한 리뷰를 보고 조금 용기가 났지
그 전에 리뷰를 쓸 생각이 없었던건,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야
아, 영화는 아무래도 좋은데 말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잔인함의 정도는 좀 좁은 것 같아
잔인함 때문에, 곤두선 나의 감각들 때문에
영화를 잘 읽을 수 없었어
그러나, 허지웅의 리뷰를 보고 조금 정신을 차렸지
'아, 그런 의미가 있었지.'
라고 말이야.
중국 로케 부분의 연출은 참 오그라들정도로 별로였어
아,
스포일러 있습니다
그런데, 협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을 감안하고 중국로케 부분을 많이 넣은 것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 구남이가 조선족이란 설정은 훨씬 간편하게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야
응, 뒤돌아보면 Establishing shot은 중국로케에서 두드려졌거든
구남이란 인간을 설정하고, 그 밑바닥에 삶의 저변에 깔린 최소한의 절박함
그걸 보여주기 위해 영화 중후반부에 있는 긴장감있는 테이크들과는 달리,
총 4부 중 1부에서는 전혀 다른 느린연출이 있지. 매스터샷도 많이 있고
카메라 핸드헬드로 방안 곳곳을 비추는 등 그런 자본주의의 화려함을 씻어내주기 위한
장면들이지.
아, 나홍진씨가 표현하고자 했던것이 이해는 가.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표현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들어.
누구나 표현방식에 대한 주관은 있는것이고 그것은 뚜렷할수록 좋은 것이지만,
적어도 대중의 취향에 맞아떨어지기는 힘든것 같군.
그 문제와는 별개로 말야,
반대로 좀 두둔하자면, 이런 주제를 중심내용으로 다룬 영화가.. 많지는 않은것 같아
갑자기 떠오르는건, 멜깁슨의 아포칼립토가 있지.
아!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아.
황해-아포칼립토
시간있으면 이 두 영화를 함께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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