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forfeit three-quarters of ourselves in order to be like other people."
- Arthur Schopenhauer
"Most people are other people. Their thoughts are someone else's opinions, their lives a mimicry, their passions a quotation."
- Oscar Wild
아이폰 앱으로 개발되었고, 안드로이드도 최근에 서비스가 되었으며,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여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다.
비슷한 형태로 '햇살'이란 앱이 있으나, 성장속도와 그 수용자 확장정도로 볼 때 비교가 안된다.
왜 그럴까
극명한 차이가 나로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는데,
앱을 설치하고 실행하면 '무조건'계정을 생성해야만 쓸 수 있다.
계정생성은 매우 간단하다. 폰 번호를 입력하고, 바로 문자로 뜨는 인증번호를 넣고
(요즘 다른 어느 서비스 홈페이지 약관보다도 적은) 두 약관에 선택권 없이 동의하면 계정 생성 완료다.
확인하는 것은 유일하게 '니가 들고 있는 폰 번호' 이다.
그런데, 가입을 완료하고 나면 무시무시한 친구목록이 뜬다
자신의 폰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와 연동하여 연락처에 있는 사람 중 카카오톡(이하 카톡)을 설치한 사람은
모조리 다 친구가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내 연락처엔 저장이 되어 있으나 상대방 폰에는 내 번호가 없을 경우
상대방의 카톡에 자동으로 '내'가 추가되지만
애초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내 아이디를 보고 나를 알아보거나
또는 프로필 사진으로 날 알아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세요?' 다.
즉, 카톡을 설치한 스마트폰 중 한쪽에만 연락처가 있어도 무조건 '친구'다.
내가 여자가 되어 친구의 완력에 억지로 나이트에 끌려가 또 그 안에서 웨이터 깍두기의 팔에 이끌려
어떤 테이블에 앉았는데 눈 앞에 '뭐 이건 전 남친'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가 의심하여 카톡을 잘 쓰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모조리다 친구로 되는 것에 대해 말이다.
"차단하면 돼. 차단할 게 많아서 귀찮긴 하지. 매일 한 명씩 친추도 들어오고"
실제로 그 놈의 친구목록을 보니 10명이 되지 않았다.
이게.. 카톡 나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설치 해 보고 5-6명이 지맘대로 내 '친구'이길래 바로 계정을
삭제 했었다. 몇 달전에도 한 번 그랬고, 오늘 또 연결 된 느낌을 받고 싶었는지
용기를 내어 세 번째로 계정생성을 했으나,
아, 20명이 넘는 사람이 '새로운 친구'로 등록된다.
그래 차단을 해 보자.
적어도 한 달 안에 한 번이라도 3G망을 이용하여 전파송수신을 한 인간만 남기고 다 차단하면, 2명남는다.
게다가, 주여
"이거 '차단'이란 빨간 네모잖아요"
요는 이렇다. 목록에는 누군지 기억안나는 여인, 소개팅하고 애프터 안했는데 번호만 남아있는 여인들,
인간적으로는 안 좋아하나, 내가 공부하는 시험을 합격해서 조언을 구했던 선배, 학교동기지만 2년쯤
본적도 연락한적도 없는 사람, 일본 여행중 이틀 정도 여정을 함께 했던 사람,
그리고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고개숙여지는 전 여자친구..
지레 겁을 먹고 계정을 매번 바로 삭제 했기 때문에 차단 메커니즘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
예를들어 내가 차단을 했을 때 그 쪽에 통보가 되는지, 또는 안가더라도 그 쪽에서 나중에 날 친구로
등록하려 하면 '차단되어 있습니다'라고 알려지는지 등 말이다.
차단의 의미야 어찌되었든 간에, 단적으로 햇살과 카톡을 비교하면 이렇게 명백하고 중대한 차이가 있다.
첫번째 함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사디스트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체계 전체를 파악하기 전에 간단하고 신속하게 계정을 만들고 그 순간 상호적 관계든 일방적 관계든
손을 잡아 끌어다가 맺어 놓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 연락처에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오프라인으로도 아는 사람일 것이고
그런 사람과 친구를 무조건 맺어 놓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페이스북, 싸이월드도 계정 간 연결망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친구추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전 여자친구랑도 쿨하게 문자 날리고 채팅하는 것이 아메리칸 스따일, 세련된 것인지 모른다.
이제 김동률, 토이 노래들은 다큐멘터리 역사속으로.. 이런건지도 모른다.
내가 늙었나.. 이런 생각을 잠시 했다가,
두번째 함의는,
내가 늙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관계' 또는 '소셜 네트워크'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학교때는 '다모임'이란게 있었다.
계정정보와 게시판 형성을 '학교'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남녀공학이지만 분반이었던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여러 염문들이 오가고 운동시합을 짜고, 역기능이 그렇게 크지 않은 훈훈한 커뮤니티였다.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선생님께 반항(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다)했다가
싸대기 쌍발 쌍발 원 투 훅 투 발 발 발 콤비네이션으로 50대 가량 맞은 적이 있는데
그 날 축 늘어져 집에 돌아와 밤에 다모임에 들어갔는데, 많이 가깝지 않은 친구들까지 나를 위로해주는
글을 쓴 것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중심은 오프라인에 있었던 것이 지금과의 큰 차이가 아닌가 한다.
지금은 온라인에 중심을 두고 있는 의사소통의 주체들이 많아지지 않았는가.
소위 인터넷 '자경단'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전방위적 활동이
그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의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또한 소위 'OO녀' 'OO남' 등의 별명이 붙는 인터넷 심심풀이 기사 또는 사회적 이슈들을 보라.
'우린 인간의 얼굴보다 모니터를 훨씬 오랜시간 동안 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관계들을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본질은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는데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다. 그 사람과 나와 친하다는 친밀도를 누가 계산 해
주지 않아도, 싸이 일촌, 페이스북 친구로 기록이 남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속에 친밀감이 무형의 감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알릴 의무는 없는 것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은 10년전이 원시시대처럼 느껴질 만큼 삶의 양식을 바꾸어 놓았고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다.
내가 뭐 여기서 인터넷의 유용성과 한계를 들고 평가하겠다는것이 아니고,
기계와 신기술에 호의 적인 나로서도 최근 트위터의 '긍정적 기능' 보도를 보면 일견 동조하다가
비판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번 30대 여교사의 신상정보가 파헤쳐 진 것과 전철에서 할머니에게 머리채를 잡혔던 10대 소녀
미수다에 나왔던 소위 '루저녀' 등 인터넷을 통해 사생활이 낱낱이 해체되는 많은 경우들을 보고서
구글의 뛰어난 검색엔진이 무서워졌고 이런 커뮤니케이션 따위 하면서.. 정말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했던 얘기지만) Neo-Luddites가 되려 했었지
러다이트라하면 산업혁명시기에 기계를 파괴함으로서 노동권을 쟁취하려 했던 사람들이 잖아
근데 21세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는 통계가 있다.
(순순히 따르기는 싫지만) Micro Trends란 책에 따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