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이 결혼, 나는 반댈세

침대에 누워있기, 책상 앞에 앉아있기는 모두 혼자하는 것이고

난 대부분의 시간에 둘 중 하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활발' 해지는 시간은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다.

그리고 그때는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 순수한 아이같이 기분좋아지는 활발한 시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가 있다.



얼마 전, 두 명의 여자 신입 관원이 들었다.

삼일 연속으로 같은 시간에 열심히 나오는 듯했다.

신입관원들이 대부분 한 달 이상 가지 않는데, 여성의 경우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정말 드문것 같다.

아무튼, 첫날이라서 또는 운동을 해본적이 없어서 인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묶지도 않고

줄넘기를 하더라.

가슴이 풍만하더라.

줄넘기는 내가 훨씬 빠른데 그 사람의 더 많은 게 위아래로 왔다갔다 하더라

이 빌어먹을 고도의 동체시력과 전방위 레이다 그리고 항상 준비되어 있는 4억마리의 정자.

우리 형 쇼펜하우어가 말한 '종족의 의지'때문에 나 한 개체가 이렇게 번뇌에 휩싸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집중하기가 힘들다.

섀도우를 하며 타점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정신은 분열상태.

혼미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이 넓은 체육관의 모든 남자들의 섀도우 타점이 한 곳으로 수렴한다.

아, 이건 무슨 상황인가.



이런 민망한 상황은 낭창하거나 앙칼지거나 둘 중 하나인 여성에 의해 더 악화된다.

와이어가 없는 브라를 하고 스판덱스가 섞인 + 광택이 있는 소재

이거, 아무리 많이 양보해도 보는 남자가 개새끼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형, 쇼펜하우어의 어록 중에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정장을 입은 신사가 대화를 하고 있다면, 그 남자의 머릿 속에는 성욕밖에 없다."

라는것이 있는데, 긍정하든 부정하든 제한적 긍정이든 간에

남자도 때로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서 집중하고 싶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성분들 복싱이 살 많이 빠진다고 알려져서 찾으시는 그 동기는 좋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반대입니다.

운동량이 확실히 많지만, 그만큼 땀흘려 열심히 하시는 여성분은  못봤습니다.

(열심히 했을 경우) 삼각근(어깨) 발달해서 여성스럽고 예쁜어깨 안나옵니다. (물론 이건 내 기준)

요가나 필라테스를 추천해요.


한국 여자복싱의 맹위는 다른문제고, 아무튼 체중감량위한 여성과 복싱의 결혼, 나는 반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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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니 정확히는 어제 지웅이 형이 결혼을 했다.

당사자는 과정안에 있어 못느끼겠지만, 남이보기에 결혼이란 꽤 '후딱'이루어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 동창놈도 결혼을 한다니..

나는 결혼에 대해서라면 오른쪽 발을 뒤로 한 발짝 빼고 리치 안에 들어오면 언제든 때릴 기세로

방어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뭐. 좋은 사람이 내 영역으로 들어오면 언제그랬었냐 하겠지.

그리고 후딱해버리겠지. 말도안되게.

그것과는 별개로,

나로서는 타인의 무엇무엇을 바라는 것이 굉장히 드문 행위인데, 행복하길 바란다.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결국, 꿈을 빼앗겨 버렸다

누워서 잠이 들려는 순간 누군가 노크를 해서 나갔더니 그녀가 대뜸 들어와 버렸다.

밤이란 걸 잊은건지 낮에 내내 자고 있다가 이제 하루를 시작한 건지 밝고 활기찬 얼굴로 그녀가 들어온다.

다짜고짜 웃는다.

뭐가 그리 즐겁니.

근데,

니가 웃으니까 나도 좋다.

이렇게 좋은건 말이 안된다.

이건 꿈이다.

가까이 다가와 앉는다.

웃지마라 이건 꿈이다.

이런저런 사랑스러운 말들을 던진다.

난 참을 수 없어서, "잠깐만!"

얼굴을 잡고 묻는다

"이거 꿈이잖아, 그치?"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웃지마라. 제발. 나도 웃게되잖아.

"꿈인것 같으니 내 얼굴 때려봐 얼른"

이미 나는 꿈이란 확신보다 꿈이아니었으면 하는 욕망에 항복하고 있다.

둘러봐도 내 방의 구조와 다르고,

사방으로 창이 나 있으며, 카펫도 깔려있는데,

난 그렇게 꿈이 아니라고 믿어버렸다. 그게 편했다.


마음이 편해지고 서로 말이 없어지고 우린 입을 맞췄다.

그녀에 대한 초조함, 짜증, 의무감들은 사라지고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눈, 그리고 미소만 남았다.

꿈에서 만나는 그녀는 항상 같은 모습이다.

내가 싫어했던 그녀의 장점도, 내가 좋아했던 그녀의 단점도 보이지 않는 존재인데

그녀는 내 꿈을 가지고 마음대로 흔들어 놓는다.

꿈은 내 욕망이 아니라 그녀의 눈빛에 의해 움직인다.


날이 밝아오면서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왔다.

나는 성급하게 커튼을 치려 돌아다녔으나, 대부분의 창에 커튼이 없었다.

방 안이 다 밝아지자 사람들이 들어온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방의 테이블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고 빵을 꺼내 먹는다.

한, 두명 그렇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와 버렸다.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this is my property, so please step outside"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this is my property, step outside!"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녀는 내 방에서 사라졌다.

분노가 폭발했다.

"꺼져버려 이 개새끼들아!!!"

내가 소란을 피우자 집주인 여성이 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내 침대가 저쪽에 있고 욕실이 저쪽에 있는데, 아침마다 내 나체를 이사람들에게 보여줘아 한단 말이에요?"

"어쩔 수 없잖아요, 침대 쪽에서 떨어진 이쪽 영역은 공유된 공간입니다."

"계약할 때 이런 내용은 없었잖아요"

"공유된 공간이 없다는 내용도 없었죠, 그나저나 욕설을 퍼붓고 소란을 피우셨다니 유감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몇 몇 사람들은 대놓고 인신공격을 해댔다.

서너명 쯤, 조용히 나를 위로하는 말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2010년 11월 14일 일요일

분업의 역설

추석 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쳐도 이 동네에 짱박혀 있었는데,

오랜만에 몸과 마음의 재충전을 위해 본가에 내려갔다.

명분으로 가자마자 김장이다.

가방을 맨 채로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배추, 쪽파, 갓, 무, 열무 등을 사러 돌아다녔는데

식칼을 놓은 지 딱 3개월 째인데 채소가격이 그 전의 가격의 2배를 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가격을 물어보고 대답을 들을 때마다 숨이 넘어갔다.

그간 그저 뉴스에서 배추값 폭등을 보고 중국산 배추를 국가차원에서 들여오고 그 배추의 품질이

문제가 되고 등등 '저런 저런..' 하던 얘기가 눈 앞에 펼쳐지니 슬슬 근심이 싹텄다.

(이런 신민 의식)

옷을 고르는 것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가격을 따져보고 배춧잎을 하나 하나 토끼마냥 뜯어먹어 보고

좀 더 알찬걸 고른다고 전부 다 들어보고


그렇게 1시간 가까이 고른 것 같은데 가격 때문에 구매한 배추는 고작 스무 포기



김치를 무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김장 하는 날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이내의 김치는

아저씨처럼 그것만을 만찬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환장을 하는 바,

또한 김장 날 보쌈의 쾌락 역시 집까지 내려온 보람의 가장 큰 부분인 것인데

우리 어머니 지갑의 남은 만원짜리 장수를 보니 아, 마음이 무겁다.

만원짜리 없어 -.-;



어머니의 김장 담그기를 본격 도와드린 것은 처음인데,

이걸 어떻게 혼자 하셨을까

꼬박 이틀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것도 사전에 고춧가루와 마늘 등을 준비 해놓았다면 말이다


그렇게 시골 마을 동네 아주머니들 마냥 이런 저런 얘길 해 가며 속을 채우다가,

TV도 라디오도 틀어놓기 불편한 이 작업을 혼자 하면 고시촌에서 쓸쓸해 하는 내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

앞으로 가능하면 매년 김장 때는 도와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풀코스는 처음이라 김장도 나름 재밌다

배추, 귀엽다



아무튼, 채소가격 폭등과 앞으로 김치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해

얘길 하다가

채소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신문마다 다 달라서 잘 모르겠다.

거론되는 주장들은,

- 배추를 비롯한 채소 등 상품성이 약한 작물들을 기르는 농가의 이탈
- 4대강 사업으로 축조된 보(洑)로 인한 주변 농경지 축소
- SSM등 대형 유통사업자들의 사재기로 인한 품귀
- 농산물 유통업자들의 중간 비용 확대 수수
- 가정으로 들어가는 신선식품 비중 줄고, 가공공장으로 가는 신선식품 비중 늘어
  (가공공장으로 갈 경우, 작황이 좋지 않아도 일정 수준의 물량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량선거래를 해서 가정으로 들어가는 배추 등의 가격이 높아지게 됨)

2년전 까지만 해도 할머니 댁에선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민 입장에선 흉년이라서 작황이 좋지 않아도

풍년이라서 작황이 좋아도 농가 소득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흉년이라는 분위기가 돌아도 유통상이 밭에서 트럭에 싣고 가는 단가는 비슷하다.

풍년이면 당연히 단가가 낮아져서 종자 값을 건지는 수준에 그칠 때도 있다 하니,

작물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당한 작황이 가장 안정적인 소득이 되는 것 같다.

따라서, 배추 농가들이 밭떼기든 경매든 돈받고 넘긴 단가를 검색해 보면 작년과 크게 다르진 않은걸 보니

배추가격이 작년의 두 배 이상 뛰었어도 농가로 돌아가는 추가 소득은 없다시피 한 것은 확실하다.

 

'뭘 걱정하냐 Life is Good'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근데, 내 입맛으로 확실한 건 외국 배추는 맛없고 공장에서 나온 김치는 정말 맛없다.


눈돌아가게 비싼 가공 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많이 유통되는 종가집, 홍진경 김치는 집 김치에 비하면 정말 맛.없.다.


옛날로 돌아가자고 떼쓰는게 아니다. 삶의 양식은 날로 달로 바뀌고 있는데 아무생각없이 팔짱끼고

맛있는 김치를 돈 없으면 점점 먹기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슬프다는 거다.

어렸을 때는 김치를 사먹는 것이 지금만큼 자연스럽지 않았다. 제조업자도 몇 없었고.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일 때까지 고추장과 된장, 간장을 집에서 만드셨으나,

이젠 모두 사서 쓰신다.

또한 물을 사먹는 다는 것도 그랬는데, 다행히도 산소 사마시는건 지금도 어색하다.

이렇게 전체적으로는 김치라는 식품도 가공되어 먹는 것이 일반화되는 추세로 본다면

농촌이나 근방 소도시의 거주민만 김장을 해서 먹고,

도시에서는 김치를 만들어 먹는 가정은 거의 없어질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요리를 많이 할 때 만든 숙성 식품은 '피클'정도 였고,

앞으로 일을 하더라도 도시에서 살 면서 토요일, 일요일을 그대로 김장에 올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김치를 먹긴 먹을테니 그건 거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겠고,

돈을 벌어 내가 번 돈과 김치와 교환하여 김치 만든 사람은 돈을 받고 나는 김치를 얻는다.

사회적으로 '분업'이다.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초음속 돌파

음속은 360m/s이다.

또한 소리는 기본적으로 파장이고, 매질을 통하여 전달된다. 지구에서 대부분의 경우, 매질은 공기일 것이다.

여기서 전투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폭발음을 간단하게 설명 가능하다.

전투기가 공기를 가를 때, 기체와 공기와의 마찰력에 의해 파장이 형성되고 이는 꽤 시끄러운 소리가

되어 인근 거주민들에게는 소음공해가 된다.

이 시끄러운 소리가 인간의 귀에 도달하는 속도가 360m/s이다.

초음속이란 이 속도를 넘어가는 속도란 의미이므로, 마찰에 의해 파장, 그리고 소리가 생기기 전에

실제 물체인 전투기가 그 경계를 뚫고 나가면서 엄청난 압력변화가 생겨 폭발음이 나타나고,

강력한 파동이 주변의 물체에 손상을 입힐 정도로 퍼져 나간다.

이리하여 대한민국 공군은 규정상 1만 5천 피트 이하에서 초음속 비행을 금지하고 있다.



초음속은, 연원은 모르겠으나 그 단위를 Mach 흔히 '마하'를 사용한다. 영어 발음으로는 '마크'에 가깝다.

얼마 전 모닝글로리에서는 '마하 펜'을 출시 했다.

국산 펜치고는 좋은 품질에 입소문도 타고 (특히 고시촌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12자루, 한 박스를 샀었다.

수성잉크 탱크형이고, 파인팁으로서 날카로운 획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으며,

가방에 넣고 뛰어다니지 않는 한 예전의 국산 탱크형 수성펜 처럼 터지지는 않는다.

잉크가 다 되기 전에 펜이 나오지 않거나 끊기는 일도 거의 없어 기술의 발전을 체험했다.


그런데, 이것은 왜 마하펜일까?

초음속의 속도로 쓸 수 있다는 것일까? 독서실에서 폭발음과 함께?

고시의 답안은 '굉장히' 빨리 써야 하는데 이 수요에 특화하여 과장된 이름을 붙인 것일까?


나는 의심을 멈출수가 없었다.

왜냐

이 펜은 빠르게 쓰는데 너무나 적합하지 않다.

나는 스스로 글씨를 빠르면서 비교적 가독성 좋게 쓴다고 자부한다.

나의 오른손 중지는 항상 굳은 살이 배겨 있으며, 또한 어릴 때부터 펜을 세게 쥐는 습관으로 조금 휘어있다.


글씨를 빠르고 정확하게 쓰려면 강한 그립은 불가피한 요소인데,

이 마하펜은 토글타입(내맘대로 붙인 말)이 아니라 캡을 뽑아서 쓰는 타입인데,

캡과 펜의 경계가 직각으로 깎여 있어서 손으로 꽉쥐고 쓰면 한 페이지도 다 쓰기 전에 통증이 온다.


게다가 사실 파인팁은 획의 날카로움을 보장하는 만큼 종이와의 마찰을 늘려 'ㅇ'과 같은 획을 그을 때,

저항감이 크다. 이는 정확한 동그라미를 보장하는 면이 있지만, 속도를 위해서 예쁜 동그라미는 포기해야함.


펜이 끊기지 않고 잉크가 잘 터지지 않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다 그립감이나 디자인을

염두에 둘 수 없었던 기술 수준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만하고 이 동네에서 인지도 있는 펜은 세 종류이며, 안타깝게도 모두 일본산이다.

- Zebra의 SARASA
- Mitsubishi의 JET STREAM
- Pentel의 ENERGEL

사라사가 가장 가볍고 무난하나, 세게 쥐면 부서질것 처럼 약하고 좀 가는 편이라 여성들이 선호하는 듯

젯 스트림은 디자인과 그립감이 가장 좋으나, 잉크가 유성이라서 볼회전의 저항감이 있는 편이다.

에너겔은 투박하고 가장 길며 굵은 편으로 흡사 독일산 펜과 같은 느낌이고, 젤 타입 잉크로 가장 부드러운

쓰기가 가능하다. 구린 디자인과 손잡이 부분의 비닐또는 플라스틱과 같은 고무가 미끄러워 그립이 나쁘다.


그래서, 리필용 카트리지를 자세히 들여다 본 후, 에너겔 카트리지를 젯스트림에 끼웠는데, 맞는다!

최고의 조합을 발견하여 쾌재를 불렀다가,

오늘 하루만에 펜 잉크의 반을 썼는데 (오늘 어쩌다 빡쳐서 10시간 넘게 공부했다. 처음이다. 태어나서.)

쓰다보니, 카트리지의 길이가 미세하게 짧아서 안에서 조금 유격이 발생하고,

종이에 눌러 쓸 때마다 딱딱거린다. 카트리지 길이를 덧댈까 생각했으나, 쓸데 없는 짓인것 같고.


그냥 순정 에너겔에 적응할까 생각중이다.

뭔가, 달인이 되는 느낌이다.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또 일주일을 용케 선방하였고, 오늘도 10시까지 스터디를 하고 체육관에 가서,

줄넘기를 하고

섀도우를 하고

샌드백을 치고

턱걸이를 하고

복근운동을 하고

허리 운동을 하고

벤치프레스를 하고

줄넘기를 하고

기분좋게 마트에 가서 피존과 맥주를 사서

한 캔을 두 번에 나누어 꿀꺽꿀꺽 하고는

피존을 먹은건 아니고 (먹어 볼까 생각했었음)

'그래, 한 주 열심히 했어! 예능 하나 다운 받아 보고 푹잔다음 토요일, 일요일도 열공하자'

라고 해 놓고,

믿어지지 않게도

정말 내가 싫게도

4MEN의 '못해'를 듣고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를 듣고

심지어 Zia의 '술 한잔 해요'도 듣는다.



그러면서 이러고 있다.

자고로 술을 의인화 한 가전문학인 '국선생전'을 보면, 술이란 여럿이 모여 즐거움을 더할 때 필요한 것인데,

맥주 캔을 들고 호탕하게 웃으며 뜨형을 보려던 기분이 천근만근 가라앉아 버렸다.


아,

이전에 여수에 여행을 갔을 때, 여수역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약주를 한 잔 하셔서

얼굴이 붉은 할아버지께서 옆에 앉아 이래저래 넋두리를 하셨다.

그게 10분이 짧다하고 한참을 강연하셨는데, 처음에는 저렇게 연세가 드신 분이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시네

신기했다가도 같은 얘기가 2번, 3번 계속 되자 내 안의 분노가 쌓였고, 열차시간 핑계를 내고 기분이

이미 나쁠대로 나쁜 채 일어섰었다.


나는 어제, 독서실 총무에게 동영상을 여럿이 볼 수 있는 프로젝터 룸이 있느냐고 물어보러 갔었다.

그런건 없었고, 총무는 연신 한 명이 볼 수 있는 PC는 있다고 얘기했다.

그걸로 나란히 앉아서 볼 수는 있다. 예약은 어떻게 해야 한다. 예약 인원이 없어서

그냥 저한테 말씀만 하시고 쓰시면 된다. 등등 나는 전혀 필요없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그냥 내가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다는 게 좋아서 "아, 그래요. 그렇군요" 하며 실실거리고 대답하였다.



그 노인은 얼마나 외로웠던 것일까.




작년의 일이다. '녹두거리'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서 이것 저것 알아보려

말그대로 '외부인'으로서 쏘다니고 있을 때, 단 그 몇시간 사이에 걸어가며 혼잣말을 하는 사람을

대여섯명 보았다는 것에 놀라면서, 여기엔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핸즈프리를 착용하지 않았나 유심히 보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굉장히 긴 혼잣말을 했다.

어제인가, 나도 이미 걸어다니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다지 이상한 말들은 아니다.

그냥.. '아, 지금 운동을 가면 배가고플테니까 저녁을 먹고 체육관에 가자' 라든가

'그 책을 헌책방에서 사야하나.. 아니야 신간을 사야겠어'

할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말인데 굳이 따지자면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대화형식이란게 좀 측은하다.

이젠 내가 과거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던 사람이 되었다.



'디스트릭트 9'이란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인 '비커스'가 남아공 사투리로 흥분해서 욕하는게 정말 맛깔났다.

주인공은 여타 많은 SciFi영화들에서 흔하지 않은 말그대로 '평범한 인간'이다.

영웅심리, 영웅이 되어보자라는 생각조차 없는 수동적이고 평면적인 밋밋한 캐릭터다.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쇳조각으로 꽃모양을 만드는 그를)

그는 장인어른의 배경으로 외계인 이주정책을 펴는데에 군인도 아니면서 리더를 맡게되고,

그 과정에서 어쩌다 외계인의 에너지원 액체와 접촉하게 되어 오른 팔 부터 서서히 외계인이 되어간다.

그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들이 짐승보다 못하다고 혐오하며 추방하고 격리시켰던 외계인으로 변해간다.

절대 일어날 수 없을 일 일것 같았던 일.

자신이 철저하게 타자화 했던 대상이 되는 일.

생각하고 상상하고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현재 처한 상황과 나의 자아, 나의 페르소나 이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란 생각은 열어두는게

더 큰 사람이 되는데에 중요한 요소다.

세상이 언제까지나 알 수 없는 것처럼, 대상을 파악하는 관점을 선택하는것은 불가피한 것과 같이

인식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원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것처럼,

현재 내가 좋은 것을 많이 가졌다면 (그 것이 돈이든, 사랑이든, 심지어 생각일 지라도)

그것을 언젠가는 잃을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굳건히 타자화하지 말 것이며,

현재  스스로에 대하여 불만이 있더라도 불만이란 감정에 사로잡혀 나를 제한하지 말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며, 그에 따라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뭔소리 하는거야.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나는 어디쯤 있지?


 "We forfeit three-quarters of ourselves in order to be like other people."
 - Arthur Schopenhauer

 "Most people are other people. Their thoughts are someone else's opinions, their lives a mimicry, their passions a quotation."
 - Oscar Wild


발단은 카카오톡 http://www.kakao.com/talk/ko

아이폰 앱으로 개발되었고, 안드로이드도 최근에 서비스가 되었으며,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여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다.


비슷한 형태로 '햇살'이란 앱이 있으나, 성장속도와 그 수용자 확장정도로 볼 때 비교가 안된다.

왜 그럴까

극명한 차이가 나로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는데,

앱을 설치하고 실행하면 '무조건'계정을 생성해야만 쓸 수 있다.

계정생성은 매우 간단하다. 폰 번호를 입력하고, 바로 문자로 뜨는 인증번호를 넣고

(요즘 다른 어느 서비스 홈페이지 약관보다도 적은) 두 약관에 선택권 없이 동의하면 계정 생성 완료다.

확인하는 것은 유일하게 '니가 들고 있는 폰 번호' 이다.



그런데, 가입을 완료하고 나면 무시무시한 친구목록이 뜬다

자신의 폰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와 연동하여 연락처에 있는 사람 중 카카오톡(이하 카톡)을 설치한 사람은

모조리 다 친구가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내 연락처엔 저장이 되어 있으나 상대방 폰에는 내 번호가 없을 경우

상대방의 카톡에 자동으로 '내'가 추가되지만

애초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내 아이디를 보고 나를 알아보거나

또는 프로필 사진으로 날 알아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세요?' 다.

즉, 카톡을 설치한 스마트폰 중 한쪽에만 연락처가 있어도 무조건 '친구'다.



내가 여자가 되어 친구의 완력에 억지로 나이트에 끌려가 또 그 안에서 웨이터 깍두기의 팔에 이끌려

어떤 테이블에 앉았는데 눈 앞에 '뭐 이건 전 남친'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가 의심하여 카톡을 잘 쓰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모조리다 친구로 되는 것에 대해 말이다.

"차단하면 돼. 차단할 게 많아서 귀찮긴 하지. 매일 한 명씩 친추도 들어오고"

실제로 그 놈의 친구목록을 보니 10명이 되지 않았다.

이게.. 카톡 나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설치 해 보고 5-6명이 지맘대로 내 '친구'이길래 바로 계정을

삭제 했었다. 몇 달전에도 한 번 그랬고, 오늘 또 연결 된 느낌을 받고 싶었는지

용기를 내어 세 번째로 계정생성을 했으나,

아, 20명이 넘는 사람이 '새로운 친구'로 등록된다.

그래 차단을 해 보자.

적어도 한 달 안에 한 번이라도 3G망을 이용하여 전파송수신을 한 인간만 남기고 다 차단하면, 2명남는다.


게다가, 주여

"이거 '차단'이란 빨간 네모잖아요"

요는 이렇다. 목록에는 누군지 기억안나는 여인, 소개팅하고 애프터 안했는데 번호만 남아있는 여인들,

인간적으로는 안 좋아하나, 내가 공부하는 시험을 합격해서 조언을 구했던 선배, 학교동기지만 2년쯤

본적도 연락한적도 없는 사람, 일본 여행중 이틀 정도 여정을 함께 했던 사람,

그리고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고개숙여지는 전 여자친구..



지레 겁을 먹고 계정을 매번 바로 삭제 했기 때문에 차단 메커니즘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

예를들어 내가 차단을 했을 때 그 쪽에 통보가 되는지, 또는 안가더라도 그 쪽에서 나중에 날 친구로

등록하려 하면 '차단되어 있습니다'라고 알려지는지 등 말이다.



차단의 의미야 어찌되었든 간에, 단적으로 햇살과 카톡을 비교하면 이렇게 명백하고 중대한 차이가 있다.

첫번째 함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사디스트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체계 전체를 파악하기 전에 간단하고 신속하게 계정을 만들고 그 순간 상호적 관계든 일방적 관계든

손을 잡아 끌어다가 맺어 놓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 연락처에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오프라인으로도 아는 사람일 것이고

그런 사람과 친구를 무조건 맺어 놓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페이스북, 싸이월드도 계정 간 연결망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친구추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전 여자친구랑도 쿨하게 문자 날리고 채팅하는 것이 아메리칸 스따일, 세련된 것인지 모른다.

이제 김동률, 토이 노래들은 다큐멘터리 역사속으로.. 이런건지도 모른다.

내가 늙었나.. 이런 생각을 잠시 했다가,

두번째 함의는,

내가 늙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관계' 또는 '소셜 네트워크'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학교때는 '다모임'이란게 있었다.

계정정보와 게시판 형성을 '학교'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남녀공학이지만 분반이었던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여러 염문들이 오가고 운동시합을 짜고, 역기능이 그렇게 크지 않은 훈훈한 커뮤니티였다.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선생님께 반항(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다)했다가

싸대기 쌍발 쌍발 원 투 훅 투 발 발 발 콤비네이션으로 50대 가량 맞은 적이 있는데

그 날 축 늘어져 집에 돌아와 밤에 다모임에 들어갔는데, 많이 가깝지 않은 친구들까지 나를 위로해주는

글을 쓴 것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중심은 오프라인에 있었던 것이 지금과의 큰 차이가 아닌가 한다.

지금은 온라인에 중심을 두고 있는 의사소통의 주체들이 많아지지 않았는가.

소위 인터넷 '자경단'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전방위적 활동이

그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의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또한 소위 'OO녀' 'OO남' 등의 별명이 붙는 인터넷 심심풀이 기사 또는 사회적 이슈들을 보라.


'우린 인간의 얼굴보다 모니터를 훨씬 오랜시간 동안 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관계들을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본질은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는데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다. 그 사람과 나와 친하다는 친밀도를 누가 계산 해

주지 않아도, 싸이 일촌, 페이스북 친구로 기록이 남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속에 친밀감이 무형의 감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알릴 의무는 없는 것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은 10년전이 원시시대처럼 느껴질 만큼 삶의 양식을 바꾸어 놓았고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다.

내가 뭐 여기서 인터넷의 유용성과 한계를 들고 평가하겠다는것이 아니고,

기계와 신기술에 호의 적인 나로서도 최근 트위터의 '긍정적 기능' 보도를 보면 일견 동조하다가

비판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번 30대 여교사의 신상정보가 파헤쳐 진 것과 전철에서 할머니에게 머리채를 잡혔던 10대 소녀

미수다에 나왔던 소위 '루저녀' 등 인터넷을 통해 사생활이 낱낱이 해체되는 많은 경우들을 보고서

구글의 뛰어난 검색엔진이 무서워졌고 이런 커뮤니케이션 따위 하면서.. 정말 이렇게..

<이미지 출처 : http://www.bustedtees.com/skynet >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했던 얘기지만) Neo-Luddites가 되려 했었지

러다이트라하면 산업혁명시기에 기계를 파괴함으로서 노동권을 쟁취하려 했던 사람들이 잖아

근데 21세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는 통계가 있다.

(순순히 따르기는 싫지만) Micro Trends란 책에 따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