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일 수요일

사람으로서 깊어가고 싶어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가장 많이 생각해 본 경우라고 해봐야 앞으로 세 턴. 프로기사는 아홉수까지 고려한다는 말을 들은적이있는데, 쉽게 상상이 되는 일은 아니다.

인간관계가 언제나 그런 게임들처럼 대립각을 세우고 임하는 건 아니지만 한 수 한 수 주고 받으며 상대를 짐작해 보기도하고 상대가 이렇게 반응했으면 간절히 바라며 움직이는 데에서 그 그림이 참 비슷하다. 이긴게임이다 싶으면 가지고 놀 생각도 하고 코너에 몰리면 근시안적인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거기에서 깊이라는 건 아홉수를 예상하는 데 그쳐서는 모자라다. 아홉 수 중 상대가 예상 밖의 수를 두었을 때에도 유연하게 그 이후로의 수들을 모두 고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홉수는 어디까지나 내가 쓴 시나리오니까 말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 여성이 화장을 제대로 하지 않고 나왔을 때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는것은 짧다. 나아가 그 사람은 아침에 늦게일어나 자기관리도 잘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지레짐작 하는
일은 위험하다.

우리가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는 건 매우 깊은 사람이 아니고는 저항하기 힘들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입견과 자기중심적인 시나리오 쓰기와 싸우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눈 앞의 50대 남성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20대 삶을 마음대로 짐작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오셀로, 테스, 마담 보바리, 안나카레리나 이들은 소설이거나 픽션이지만 삶의 군상이 이런 이야기들로 부터 동떨어져 있다면 누구도 그걸 재미있어하지 않을 것이다. 신문에 한 줄로 요약되어 몇 분만에 수십만의
험담의 대상이 되는 인생도 마담보봐리보다 더 복잡한 인생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들의 삶의 무게를 한마디 육두문자로 씹어버리기에 우리 인생은 가볍다.

우리가 담겨있는 시스템은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고 오히려 불완전하다. 때로는 불합리하다. 사람이 깊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과 더불어 그것을 통해 쌓인 선입견과 싸우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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