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 여자친구는 죽었다
어느 날 밤, 그녀의 영혼이 나와 나의 누이와 어머니가 사는 저택에 날 찾아왔다
달이 차오르지 않은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고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냉장고에 넣었고
그녀는 냉장고에 들어있던 닭가슴살에 봉인 되었다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낮은 온도를 계속 유지해야만 했다
자꾸 나오려는 그녀를 냉동실에 넣어 버리려 했다
그녀가 나에게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생각 해 볼 수 있는 두 가지의 경우 모두 다 끔찍하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닭가슴살을 냉장실에서 꺼내 냉동실로 옮기려는 찰나에
그 것의 온도가 올라가서 그녀가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웃는 무서운 밴시같은 목소리로
나에게 장난질을 걸어왔다
나는 두려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연신 닭가슴살을 락앤락에 넣고 다시 그 락앤락을 더 큰 락앤락에 넣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러지 말라며 구속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다
나는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이 안전하게 봉인되는 일임의 증거란 것을 느끼며
점점 안도해가며 락앤락에 넣었다
그러나 점점 온도가 놀라가면서 그녀는 그렇다면 연기가 되어 빠져나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 큰 두려움에 휩싸여서 락앤락 통을 냉동실에 집어던졌다
그러나 이미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나는 황망한 상태로 슬리퍼에 미끄러지듯 발을 넣고 집을 뛰쳐 나갔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문까지 열쇠로 걸어잠그고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개마냥 내달렸다
언덕을 내려와 가로등이 있는 길을 뛰어가다보니 몇 몇 사람이 보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시간이 3시를 넘겼으니 번화가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누군가를 끌어들여야 하겠다고 확신했다
그 순간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런 판단없이 잡아세운 뒤
"술 한잔 하러 같이 갈래요? 제가 아는 여자 두 명 부를게요"
라고 말한뒤
뒤늦게 그 청년의 외형을 확인 한다
내 신장에, 운동을 꽤 많이 했는지 나보다 더 덩치가 크고 우람한 친구였다
짧은 머리를 하고 있어 이유없이 안심이 되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흔쾌히 발길을 뒤로 돌려 나와 함께 번화가로 가기로 했고
나에 대한 물음 단 하나도 없이 청년은 조용히 핸드폰의 달력으로 D-day 10일을 보여주며
D-day는 제대하는 날인 것을 아홉 번의 클릭으로 넘겨서 보여주며 씨익 웃어보였다
잠시나마 이 친구는 나보다 어릴 것이며 굉장히 기분이 좋을 것이며 그런것들을 생각했다
다운타운의 경계에 들어서기 직전에 얼마간 안도할 수 있겠다란 생각을 하자마자
우리 둘 앞에 그녀가 그녀보다 어려보이는 다른 여자와 등장했다
생각해 보니 그녀가 락앤락에 갇히는 도중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닭가슴살은 두 개였는데 다른 여자아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검은색 시스루 니트안에 흰 색 면티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전보다 말라 있었을 뿐 여전히 예뻤다
옆의 여자는 그녀보다 좀 큰 키에 엄청 귀여운 얼굴을 하고 밝은 옷을 입고 얌전한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반색하는 이 청년과 두 여인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그리고 어느새 네 명의 인간 아니, 두 명의 영혼과 두 명의 인간
두 명의 수컷과 두 명의 여성의 정신작용 들이 생각하는 것은 어느 술집에 들어갈까란 물음이었다
번화가를 걷다가 청년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자주가는 큰 술집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넷은 업타운 쪽으로 걷고 있었으므로 다운타운 끝 자락즈음에 있는 그 술집은 가까웠다
그러나 바로 눈앞 한 블럭 앞에 큰 속옷 가게가 있었고
여자들은 저기에 먼저가야겠다고 했다
청년과 나는 밖에서 서 있었고
여자들은 속옷을 골랐다
청년은 자신있게 시스루를 입은 여인의 속옷 사이즈를 짐작했다
놀랍게도 속옷의 치수가 아닌 정확한 가슴둘레를 센티미터 단위로 말했다
우연히 적극적인 친구가 걸려들어서 잘된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말을 듣고서는
조금은 그 청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들이 속옷을 사서 나온다 다시 술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난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여성들이 속옷을 사는 것이 얼마나 남성에게 음란한 생각을 가중시킬지
이미 청년의 머릿속엔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기대로 꽉차있을 것이라는 것도
술집의 이름은 헤라클레스를 이상한 단어와 섞어 테라클래스인지 헤라플루토인지 란 곳으로
주인이 머리가 텅 빈 것을 감추려하는 사람일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곳 이었다
냅킨에 XX호텔이라고 씌여 있는 것을 보니 호텔에서 운영하는 곳일 것이다
몇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이런 술집은 쓸데없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강만 강할 뿐
음식이나 술맛은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다
라고 나는 생각하면서 청년이 자주 온다는 사실과 함께 머리의 생각을 정리했다
넷이 되어 걸어오는 내내 나는 내심 그녀와 청년이 함께 앉기를 바랐고
다시 한번 나와 어린 여자아이가 같이 앉게 되길 바랐다
바라던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역시나 이상하게 작은 소파에 둘둘 나란히 앉았는데
어린 여자아이와 내가 정자세로 앉으면 두 사람의 골반이 소파의 가로에 꼭 맞는 크기였다
나는 내 엉덩이가 커서 그런거라며 여자아이에게 크게 사과하면서
나의 누이도 내 엉덩이를 보고 놀린다고 저렴한 유머를 펼쳤다
아무도 웃지는 않았고
어린 여자아이만이 머쓱하게 웃으며
"옆으로 기대 앉으면 되요."
라고 말하며 착한 품성을 마음껏 뿜어 댔다
그녀에 비해 참 착한 아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도 다리를 꼬고 앉아서 공간을 늘이는데에 한 몫했다
'무엇을 마실까'
란 생각보다는
무엇을 마시게 될까 란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이미 모든 결정에서 그녀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세 명은 눈에 띄는 이유없이 그녀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역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주에 맥주를 섞은 것을 마시자고 제안했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되었다
나는 단념했고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시점부터
영화의 점프컷 처럼 시간을 건너뛰어
청년과 내가 이미 밝아진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남자가 말을 놓으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것에대해 지극히 관대한데
이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 들었다
그 청년은 여전히 밝고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정말 즐거웠다며 말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모텔에 들어가서는 더욱 적극적이었어요
미리 자신은 M이라고 말하면서 무엇을 해줄까라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리고 내가 명령하는 말투가 좋다고 계속 그렇게 말해달라고 했어요"
나는 불가피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하지 않으면서
조금은 이 청년의 말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업타운 쪽으로 잠시 걸어가다
청년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사라졌고
나는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이유없이 몸을 씻고 싶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공사를 하다만 빌딩앞에서 바지를 벗어 놓고
하체를 씻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다
한 블럭 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얼른 씻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바지를 입기 위해 그 빌딩 앞으로 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조금 지나다니고 벗어놓은 내 검은색 팬츠는 조금 더러워져 있다
백 포켓에 넣어둔 지갑을 급히 확인하고
이미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는 것을 직감한다
현금 만원짜리 두 장과 오천원짜리 세 장이 있었는데
만원 지폐 두 장만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의아함과 상실감이 느껴졌으나
단 몇 초내에 재물에 대한 마음을 다스려내고 뒤돌아 섰는데
백인 청년 셋이서 벽에 기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청년보다는 청소년이라고 해야 적합한 나이의 친구들이었다
이미 얘기 해 버려서 어떤 사건인지 난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며 낄낄대고 있었다
나는 내 생각이 그 치들이 웃는 이유가 길바닥에 바지를 벗어 놓고 어딘가에 가는 인간
때문일 것이다라는데 미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들에게 조심 스럽게 말을 걸었다
“Did you guys see anyone getting through my pant's back pocket?"
가운데에 서 있는 장난꾸러기 같이 생긴 치가
'영어를 못 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대화내용을 들은 것이 아닐까'
란 애매한 표정을 잠시 짓다가 대답했다
“No we surely didn't"
'surely'의 어조에 셋을 눕혀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나의 잘못이 명백함을 알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맨 왼쪽에 서 있는 치가 갑자기,
“Pity you, I ma give you this"
라고 이상하게 어른스러운 말투로 말하며 나에게 그림이 인쇄 되어 있는 테이블 냅킨을 내밀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 전람회의 광고물이었고 전면에 인쇄된 그림은
애니메이션의 광고라기엔 이상하게 몬드리안의 그림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젠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그 친구들의 시선으로
난 그 전람회가 내 등뒤의 공사중인줄 알았던 건물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은 반쯤 지어진 형태를 가진 현대적 건축물이었고 언뜻 보아도 볼만한 전시회임을 알 수 있어서
잠시 이 어린 청년들이 괜찮은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때, 지나가던 여성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사실 내 옆에 얼마간 서 있었던 듯 했다
내가 그 테이블 냅킨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들고있는 팜플렛에서 특정한 애니메이션을 가리키고는
“ 이 만화 반전 있나요? 있다면 그 반전을 끝까지 눈치챌 수 없게 보려면 어떤 부분을 넘기고 봐야하죠?”
질문 자체만으로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장이다
나는 당황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궁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세 청년들에게 무슨 대화였냐는 질문을 다시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방금의 것이 얼마나 우스운 물음이었는지 가볍게 웃어보이며 설명 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명 정도의 행인들이 지나가다 곁에서 내 말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