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사를 일단락 짓고 샤워를 하고 사랑했던 사브씨를 건전해 보이는 청년에게 쿨하게 넘기고 돌아온 5만원짜리 몇 장을 손에 쥐고 오만원권이 생기니 이렇게 몇장 안되는 종이구나라고 생각했으나, 뒷 면 우측 하단의 보라색 50000 글씨의 색깔이 아름다워 다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이 정도로, '오만원권이 생긴 것은 나와는 별 상관 없는 일이구나'
그래도 잠시 큰 현금을 손에 쥐고 부자가 된 느낌에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가장 든든한 순대국밥을 한 그릇 해치우며 '6천원이란 돈이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질 날이 올까' 하는 생각만큼 '순대국밥을 맛없다 생각할 날이 올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살림을 차리고 나면(그랬다면 좋겠지만 동거는 아니고 내방은 '집'이었다)이사라는 것은 엄청난 일이 되어 버린다 간단히 시간으로만 계산하여 짐을 싸는 데 1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땀을 흘려서 회색 티셔츠는 검은색 티셔츠로 바뀌고, 걸레에서 나는 냄새를 풍겨댔다
"요즘엔 빨래가 제대로 마르지 않아 그렇다"
반성의 12시간, 나름대로 웅장했던 시스템을 뒤로하고 3평방 미터나 될까하는 공간에 '정말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선택된 11인치 랩탑 앞에 앉게 되었는데,
'이,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애초에 이사를 결심하고 이 생각을 했을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중학교 때 한 번에 읽고 고향집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현재 10만원이나 한다는 법정의 무소유다. 나의 염세적인 삶의 태도는 나아져야 할 필요가 있긴 한데, 이 책이 10만원이란 돈과 맞먹게 된게 호모 사피엔스들이 책의 가치를 이전보다 높게 사서 그렇다 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되어서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사찰을 옮길 때 챙긴 것은 펜과 비누와 너덜너덜한 승복 뿐이었다' 뭐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더불어 비누하면,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는데, 때는 그가 집에서 면도를 하기 위해 고체 비누를 얼굴에 문지르는 것을 본 부인이 그에게 왜 면도용 비누를 쓰지 않고 그 비누로 면도를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이다
"삶도 복잡한데 면도하는 비누와 세수하는 비누를 두 개로 나누어 쓰는 것은 지나치게 복잡하다"
그래, 나는 일찍이 법정의 경지까지는 미치지 못해도 삶의 단순함과 물욕에 대한 초월이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해 준다는 생각을 좇아 실천하려고 하였다 얼마 전에는 (경제학)고전학파의 교환 방정식과 마찬가지로 삶의 단순도를 변수로 놓고 삶에 관한 항등식을 만들려는 노력을 '잠깐' 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에서 나온 물질이 그 부피를 표준화하자면 우체국 택배 박스 5호 정도의 상자가 20개도 넘게 나왔다 짐을 싣고 차로 서울 시내를 달리던 중에 저 마천루와 S65 AMG, 마세라티 등을 보면서 자꾸만 법정의 이삿짐이 생각났다 2년간 사들여댄 물건들을 하나 하나 손에 집어 보고 반성한 것은,
단 한 번도 그 기능을 내보지 못한 물건들
[예를 들면 터틀넥 티셔츠가 1,800무료배송 인 것을 보고 말도 안되는 가격이라며 그 못생긴걸 아무생각없이 주문하고는 단 한 번도 입지 않음, 타임스퀘어에서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 하다가 살살 웃는 얼굴로 부추겨 사버린 도장(식빵에 찍은 후 토스트기에 넣어 구우면 모양이 새겨지는, 토스트 만들어 달랬음.. 므흣)역시 단 한 번도 쓰지 않음]
이 꽤 많았고, 나머지 중에는 '단 한번' 써본 물건들
[예를 들면 요구르트 제조기, 거품기, 비알레띠 모카프레소(불편해서 곧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 예의 터틀넥과 비슷한 운명의 옷가지들]
이 대부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12 Monkeys, SIngle Man에서 나왔던게 기억나고 다른 영화나 소설에서 어렵지 않게 나오는 말 중,
'광고가 필요하지도 않은 걸 사게 한다'란 말이 있는데, 이거 흔해서 그냥 무시하는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
역시 굵직한 의미는 흔한 말에 있다 지금 남탓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국에 선택을 하는 것은 '나'라는 것/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운동 트렌드 중에 X-FIT (cross fit) 이라는 것이 있다
그 문화가 들어온 지 1년이 넘어 가산디지털단지에 공식지부도 있다
모토는 '신체의 기능적인 면을 증진시키는 운동을 하자'이며, Farmer's Walk (양 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걷기) Hammering(무거운 해머로 내려치기), Filpping Tire(대형 트럭의 타이어를 넘기며 나아가기) 등 노동과 운동의 경계를 허무는 스포츠(?)다
그렇다. 그렇게 체력이 좋다고 자부했던 고등학교 때도 빌딩 천장 공사 용역을 뛰던 중, 작은 체구의 40또는 50대 아저씨가 정말 '유유히'일하고 계신 것을 보고 눕고 싶었는데,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정말 열심히 일해서 작업 반장 아저씨가 나보고 부산에 큰공사 있다고 여관에서 숙식 대줄테니 같이 가자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의미로 마음에 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때 소위 완력과는 뭔가 다른게 있구나 느꼈다.
언제부터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름에도 하루에 땀 한방울 안 흘릴 수 있었나
지금 차가 없는데 불만은 없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 걷고 있으면 좀 짜증이 난다
그러나, 차가 생기면 하루에 1km도 걷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대체 몸은 언제 움직이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참으로 밥을 먹는 것은 내 안에서 필요한 것인데 나머지 것들은 나 밖에서 들어와 나로 하여금 그 것을 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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