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즈음, 집으로 걸어오는 골목길에 새끼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고 동물과 동물의 언어로 그것은 배고
프다는 말인것을 알아차렸다. 주차된 승용차 밑에서 조용히 고개를 내미는 놈은 다 익은 벼의 색깔에 밤
색 줄무늬 털을 입은 깡마른 고양이.
울음 소리로 짐작한 크기보다는 조금 커서 더 안타깝다. 쪼그리고 앉아 손을 내밀었더니, 그래.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고양이
근데 물러서는 폭이작다 이 녀석. 많이 배가고프구나. 근데 26년 정도 형인 내가 지금 가진게 없어.
참치캔을 사올까 슈퍼에 다녀오면 사라지고 없겠지. 아직 너랑 나 사이란게 그런거니까.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방금 씻은 내 손 아무음식 냄새도 안날텐데 손에 닿을 듯 가까이온다.
손을 뻗어 낚아채서 집으로 데리고 가자 그리고 맛있는걸 배터지게 먹여주자.
그런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고양이 고기 먹는 사람? 싸이코 살묘자?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더 의심스러울꺼 같아 그저 바라만 본다.
'모양새야 어찌되었건 간에 나는 착한 일을 하는 거니까.'
해보지만 이 놈 크기를 보아하니 4개월은 넘었는데 그간 어미젖을 일찍 떼고 떠돌다 영양이 부족해서
이리저리 이런 울음소릴 내고 다녔음이 분명하다
내 방에 데려가면 그 좁은 우리를 답답해하고 다시 떠돌아다니려고 가출을 하겠지
이 놈은 자유를 맛본 녀석이니까
이 놈 생각하니 괘씸하다.
이 깊은 밤에 저렇게 사람마음을 흔들어 놓는 울음소릴 내며 음식을 주면 아무한테나 귀염을 떨겠지
내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태어나서 세상이란 그런 것이라고 알고만 살아왔겠지. 이 녀석 생각하니 괘씸하다.
그냥 가버리겠어.
열 걸음도 못 걸어서 뒤돌아보니 어떤 남자가 다시 쪼그리고 앉아 있다. 쳇.
오랜만에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일요일이라 했다고. 그냥 했다고. 사실은 꿈에 당신이 나왔다고.
두어번 정도 떠오른 상훈이와 만식이가 이제야 생각나 떠나보낸지 3주가 지나서야 안부를 물었다.
"잘 크고 있어요?"
"방생 했다"
"방생 했다"
"방생 했다"
두 놈의 얼굴이 머릿속에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조금 화가 나서 대뜸,
"그러면 어떻게 해요! 죽었겠네"
"아니다. 수조에 갇혀 있는게 답답해 보였다. 잘 살게다."
지방 하천에 풀어주었다 하셨다
"거기 뭐가 먹을게 있다고 거기에 놔줘요! 죽었겠네.."
"아니다 거기 물고기도 많고 물도 깨끗해졌다. 요즘 비가 많이 왔으니 하류로 흘러가다 바다로 갔을거다."
"그거 바닷거북 아니에요!"
방생에 관한 어머니의 불교적 세계관에는 불만이 없으나 내게 아무말도 없이 보내버린게 아쉬워
세 번이나 죽었겠네를 연발했다
폭우로 생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바위에 부딪혀 죽어버렸을까
일주일 정도는 나도 굶긴적이 있는것 같으니 지금쯤 아사지경에 이르렀을까
아니면 금강을 지나 바다근처까지 가는 삶의 여정 동안 렙업을 해서
10년 후 대천해수욕장에서 만나게 될까
그 멍청하면서도 도도한 얼굴과 작지만 날카로운 발톱의 촉감을 떠올려 보았다
언젠가 낮에는 제법 큰 놈인데 날 두려워하지 않는 고양이를 마주쳤다
온통 검은색에 발끝만 하얀 놈이었는데 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나이도 좀 있어보이는데 떠돌이 생활에 수완이 없어 먹을 것을 잘 못구하는 놈인지 말라가지고
나와 눈이 마주친 상태로 내가 다가가도 미동이 없다
이 놈 근데 눈빛이 좀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보니 눈에 백내장이 낀 듯 눈동자가 뿌옇다
동공도 풀려 있다
고양이도 백내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건강한 상태가 100이라면 10정도로 살아가는것 같았다
데려갈까
하다가 덜컥 두려워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너와 피를 나누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물질을 소유하거나 생명체를 가두는 일은 수십 장의 약관을 안 읽고도 동의를 클릭하는 것 만큼 심플하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스스로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된다
가끔 후회도 한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많은 기회들에 우린 쉽게 등을 돌린다
그래도 여전히 우린 당신을 너무 갖고 싶다
새끼도 낳고 싶다
당신은 내게 태양같은 힘을 주니까
나는 뭐 그저 그런 사람이지만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니까
당신을 가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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