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히려 겁쟁이란걸 인정하니까 마음이 편 해졌어

오늘 오후 6시, 륙색에 라면두개랑 과자 그리고 브리프랑 양말 칫솔 치약 이렇게 쑤셔넣고 집을 나섰어 처음엔 무작정 걸어버리자란 생각이었는데 역시 석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서울을 자정전에 벗어난단건 불가능하단걸 한 시간만에 씁쓸하게 인정하고 전철에 올랐지. 지도에 바다쪽을 찍어보니 버스나 기차를 타야겠더군 걸어서간다는건 이 추위에 텐트도 없이 찜질방이 나올때까지 걷다가 나오면 그 시각이 낮이든 밤이든 자고나와야 한다는 무리가 있어. 애초에 돈을 들일 생각은 없었기에 숙소나 좋은 음식이나 이런건 안중에 없었지. 청량리에 다 와가는데 문득 오전부터 떠나버릴 생각을 했다면 10만원 이하로 차를 빌릴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들더군. 하지만 나는 놀러가는게 아냐 바다보고 웃고 신발벗고 물에 들어갔다 나와서 회 한접시 먹으며 즐겨보려는게 아니야. 그냥 맘대로 자신을 벌주고 싶었어. 누군가는 날 부러워하더군. 슬픈일이지.

그냥 안다니던 조용한 길을 몇 시간이고 걷고 싶었어 며칠이라도말야. 문제는 시간이 너무 늦었고 애초에 아무 계획이 없었기에 계획이랄까 순간순간의 결정이 아무렇게나 튀어다니다가 23:00 강릉행 태백선을 정동진까지 끊었지. 표를 끊고 시간을 보내려 역사 밖으로 나왔는데 추웠어 허리도 아프고 나는 모험을 하고 싶었다거나, 그냥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었다거나, 답답했던게 아니었어.

이제 인정할 수 있게 됐어. 표를 끊은지 한시간 만에 환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세상은 내가 날 죽이겠다고 위협해도 꿈쩍도 하지않아. 세상어딘가에 적어도 어류이상의 의식이 있는 동물들 몇몇은 내가 죽겠다면 죽지말라고 해주길 바라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아니 오히려 그건 마치 인질의 목에 칼을 대고있지만 이미 사면초가인 범인의 허세보다 더 안쓰러운 모습일테니 내가 거부하겠지.

딱 한 번 이었어. 또렷하게 기억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그냥 쓰러져서 떼써본 일. 그 때 어머니는 뭐든 다 들어주셨어. 그후로 그런일은 없었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는 그런 일을 더하지 못한 것을 너무 늦게 하고 싶어하고 있는것일 뿐이야. 이젠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어린아이의 떼를 누군가는 해주지 않을까 쓰고있어.

그런일은 없고 내가 할 일은 아주 작은 일이야. 다 그런거야 라고 말해지는 현실이 싫고 짜증나는데 난 이길 수 없어 그냥 하면 돼. 그게 현실이 맞았어 그 공식의 예외같은 일은 나한테 일어나지 않아. 아름다운 얘기는 아름다운 얘기야.

~ Bon Voy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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