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눈 없는 물고기

과거에 대해 가정하는 일은 연예인을 두고 호불호를 논쟁하는 것만큼 안쓰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럭저럭 남자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살아왔다.

약한 사회적 지위라든가 인생의 많은 부분이 천부적 외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 등은 둘째치고

언제나 연기하듯 인생을 살아야하는 것에 대해 '참 성가신 일이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나의 고요의 바다 같은 생활 저 심층에 눈이 없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단걸 알았다.

그는 거대했고 검은 색이었으며 눈이 없이 어슬렁 거리는 그의 헤엄은 무시무시했다.



과거 어느 시점을 떠올리면 근래에 시간이 꽤 빨리 흘러버렸다는 사실에 자주 놀란다.

규칙적인 삶의 리듬 때문인지, 밋밋한 하루하루 때문인지,

어쩌면 시험날이 좀 더 천천히 오길바라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의 하루는 참 간결하다.

06:45 기상

07:00 세면, 양치

07:20 조식

07:45 신문 & 양치

08:00 스터디

11:00 공부

12:00 중식 & 양치

12:30 공부

17:30 석식 & 양치

18:00 공부

20:00 운동

21:30 공부

00:30 귀가

01:00 취침


생활이 좀 안정되면서 다른 여러가지 작은 것들을 비롯하여 가장 최대의 자아 주니어 리비도인 '번뇌'도

얌전하게 쉬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줄넘기를 넘다가 문득 이 물고기가 저 밑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남자인 것이 매우 싫어졌다.

얼마나 소모적인가

얼마나 말도안되는가

그 물고기에겐 눈이 없다. 태양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좁은 어깨, 가는 허리, 긴 머리, 넓은 골반 이 중에 하나만 맞아 떨어져도 아니,

눈없이도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이 이 물고기는 맞출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지만 물고기는 그 인간과 뒹굴고 싶어 한다.

여자는 한달에 한 번 정도 하기 싫은 월경을 맞아야 하지만

남자도 한달에 수십번은 하기 싫은 자위를 해야만 이 세상을 점잖게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건전지 처럼 소모되는 삶을 대단하다 여기며 언제 어디서나 종족의 번식을 위해

기업이 이윤을 위해 무슨짓이든 하는 것처럼

유전자의 번성을 꿈꾸고 좌절하고 번성을 갈망하고 좌절하길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다.

원숭이에서 좀 더 나아지니 제도라는게 생겨서 마음껏 번식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전쟁을 만들고

술과 담배로 번뇌를 달래며 살아간다.

한국 자본주의 동물원에서 자산이 100억 이상인 수컷 호모사피엔스가 아니고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씩 번뇌와 싸워 이겨야만 평범한 남자로 살아갈 수 있다.

얼마나 멍청하고 불쌍한 존재인가, 남자는.


















쉘든 쿠퍼 처럼 되고 싶다

댓글 2개:

  1. 거부 할 수 없다면 즐겨라. 괜찮은 조언이 될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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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BC의 어색한 예능 '오늘을 즐겨라'에서 하는 말 같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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