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4일 일요일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방을 옮긴지 8개월이 넘었다. 더 좁은 방으로 옮기는데다가 이 전에 있던 방에선 2년을 보냈기 때문에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낯선 건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다. 이건 왠걸, 실측 가로 세로 110cm 정사각형의 화장실에 36W 짜리 백색 형광등이 달려 있다. 그리하여 얼굴에 난 잡티하며 다른 모양의 양쪽 눈이며 못난 얼굴을 그대로 비춰서 처음엔 세수하러 가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굳이 램프를 바꾸지 않아도 따뜻한 색 필름을 붙여 놓으면 백열등 처럼 만들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나라는 사실은 작은 일이고, 작은 일을 인정하지 않고 도망치기 싫었다. 여전히 기분은 별로다.

오늘 아버지(X)와 어머니가 집에 다녀갔다. 이틀 전부터 잠을 설쳤고, 오늘은 부모님께서 집에 도착하기 1시간 전까지 가까스로 두 시간을 잤다. 이틀 전 새벽에는 꽉 죈 감정상태를 글로 썼는데, 손을 벌벌 떨며 쓴 글은 결국 포스팅하지 못하고 두 장의 한글문서로 저장되었다. 그냥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 X에 대한 분노였다.

마음같아선 동네를 벗어나서 식사하고 싶었지만, X가 1톤트럭을 가지고 와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중 테이블 간격이 가장 넓어보이는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어려웠다. 한 지붕 밑에서 성년까지 함께 산 부모와 자식도, 농부와 농부인 자식도, 의사와 의사인 자식도 그놈의 고농축 우라늄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엄청난 세대차이 때문에 대화가 안될텐데 나는 또 조금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어려웠다. 젊어서 식당 테이블을 밑면은 어떤색인지 뒤집어 보고 싶었지만 그간 훈련된 끈이 있어 숟가락을 쥐어 구부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머니가 남의물건이다 라고 하시며 다시 펴시려는데 안되서 나보고 돌려 놓으라고 주셨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하다. 그렇지만 내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주시고 날 믿고 지지해 달라.' 이 뿐이다. 그 이상은 없는데 자꾸만 말은 산으로 간다. X의 모든 말이 기가차고 피가 솟고 내가 그 대답으로 하는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않은 채 돌아오는 말들이 답답하다.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발언이 줄을 잇는다. 돼지 갈비를 먹지 않을 생각은 없었는데, 손은 물컵만 잡고 있다. 어머니 마음이 아프시다 해서 너댓개 씹어먹었지만 벌써 탈이 나려는지 배가 아파 고기를 집었다 놓았다 해서 먹는 시늉을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말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말도 내 뱉어버렸다. '당신은 나의 생부지만 본받을 점이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X는 당연하다는듯 받아들인다. '없다'란 내 말끝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다만티움으로 된 인간처럼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야 부모는 뒤에가서 가슴아파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얻은 게 있다. X에 대한 분노는 아주 끝에가서 연민으로 바뀌었고, 키우지 않았는데 친권을 갖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합의를 얻었다. 그리고 다시금 어머니는 대단한 사람이란걸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는데 배가 아파 찬기운이 돌면서 몸이 움츠러든다. 몸이 무거워 침대로 더 내려 앉는 것 같다. 나는 작고 힘이 없다. 어릴 땐 내가 동물원에 호랑이쯤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걸음도 멈추지 않고 스스로도 갇혀있는 줄 모르는 스윈호 오목눈이 인지 뭔지 이름도 기억안할 새쯤 되는것 같다. 여전히 기분은 나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