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몸과 마음의 재충전을 위해 본가에 내려갔다.
명분으로 가자마자 김장이다.
가방을 맨 채로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배추, 쪽파, 갓, 무, 열무 등을 사러 돌아다녔는데
식칼을 놓은 지 딱 3개월 째인데 채소가격이 그 전의 가격의 2배를 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가격을 물어보고 대답을 들을 때마다 숨이 넘어갔다.
그간 그저 뉴스에서 배추값 폭등을 보고 중국산 배추를 국가차원에서 들여오고 그 배추의 품질이
문제가 되고 등등 '저런 저런..' 하던 얘기가 눈 앞에 펼쳐지니 슬슬 근심이 싹텄다.
(이런 신민 의식)
옷을 고르는 것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가격을 따져보고 배춧잎을 하나 하나 토끼마냥 뜯어먹어 보고
좀 더 알찬걸 고른다고 전부 다 들어보고
그렇게 1시간 가까이 고른 것 같은데 가격 때문에 구매한 배추는 고작 스무 포기
김치를 무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김장 하는 날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이내의 김치는
아저씨처럼 그것만을 만찬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환장을 하는 바,
또한 김장 날 보쌈의 쾌락 역시 집까지 내려온 보람의 가장 큰 부분인 것인데
우리 어머니 지갑의 남은 만원짜리 장수를 보니 아, 마음이 무겁다.
만원짜리 없어 -.-;
어머니의 김장 담그기를 본격 도와드린 것은 처음인데,
이걸 어떻게 혼자 하셨을까
꼬박 이틀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것도 사전에 고춧가루와 마늘 등을 준비 해놓았다면 말이다
그렇게 시골 마을 동네 아주머니들 마냥 이런 저런 얘길 해 가며 속을 채우다가,
TV도 라디오도 틀어놓기 불편한 이 작업을 혼자 하면 고시촌에서 쓸쓸해 하는 내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
앞으로 가능하면 매년 김장 때는 도와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풀코스는 처음이라 김장도 나름 재밌다
배추, 귀엽다
아무튼, 채소가격 폭등과 앞으로 김치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해
얘길 하다가
채소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신문마다 다 달라서 잘 모르겠다.
거론되는 주장들은,
- 배추를 비롯한 채소 등 상품성이 약한 작물들을 기르는 농가의 이탈
- 4대강 사업으로 축조된 보(洑)로 인한 주변 농경지 축소
- SSM등 대형 유통사업자들의 사재기로 인한 품귀
- 농산물 유통업자들의 중간 비용 확대 수수
- 가정으로 들어가는 신선식품 비중 줄고, 가공공장으로 가는 신선식품 비중 늘어
(가공공장으로 갈 경우, 작황이 좋지 않아도 일정 수준의 물량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량선거래를 해서 가정으로 들어가는 배추 등의 가격이 높아지게 됨)
2년전 까지만 해도 할머니 댁에선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민 입장에선 흉년이라서 작황이 좋지 않아도
풍년이라서 작황이 좋아도 농가 소득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흉년이라는 분위기가 돌아도 유통상이 밭에서 트럭에 싣고 가는 단가는 비슷하다.
풍년이면 당연히 단가가 낮아져서 종자 값을 건지는 수준에 그칠 때도 있다 하니,
작물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당한 작황이 가장 안정적인 소득이 되는 것 같다.
따라서, 배추 농가들이 밭떼기든 경매든 돈받고 넘긴 단가를 검색해 보면 작년과 크게 다르진 않은걸 보니
배추가격이 작년의 두 배 이상 뛰었어도 농가로 돌아가는 추가 소득은 없다시피 한 것은 확실하다.
'뭘 걱정하냐 Life is Good'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근데, 내 입맛으로 확실한 건 외국 배추는 맛없고 공장에서 나온 김치는 정말 맛없다.
눈돌아가게 비싼 가공 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많이 유통되는 종가집, 홍진경 김치는 집 김치에 비하면 정말 맛.없.다.
옛날로 돌아가자고 떼쓰는게 아니다. 삶의 양식은 날로 달로 바뀌고 있는데 아무생각없이 팔짱끼고
맛있는 김치를 돈 없으면 점점 먹기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슬프다는 거다.
어렸을 때는 김치를 사먹는 것이 지금만큼 자연스럽지 않았다. 제조업자도 몇 없었고.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일 때까지 고추장과 된장, 간장을 집에서 만드셨으나,
이젠 모두 사서 쓰신다.
또한 물을 사먹는 다는 것도 그랬는데, 다행히도 산소 사마시는건 지금도 어색하다.
이렇게 전체적으로는 김치라는 식품도 가공되어 먹는 것이 일반화되는 추세로 본다면
농촌이나 근방 소도시의 거주민만 김장을 해서 먹고,
도시에서는 김치를 만들어 먹는 가정은 거의 없어질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요리를 많이 할 때 만든 숙성 식품은 '피클'정도 였고,
앞으로 일을 하더라도 도시에서 살 면서 토요일, 일요일을 그대로 김장에 올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김치를 먹긴 먹을테니 그건 거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겠고,
돈을 벌어 내가 번 돈과 김치와 교환하여 김치 만든 사람은 돈을 받고 나는 김치를 얻는다.
사회적으로 '분업'이다.
요즘 계속 서론 쓰다 그만 두네 할 말이 너무 많아 한 시간동안 써도 중요한 얘기가 안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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