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6일 월요일

Time of Reflection

그 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 공간을 살피기를 스스로 거부했다

 

두려움으로부터 헤쳐나와서 잠시 들렀을 때에는 부끄럼을 더 하게 하는 자그마치 10이 넘는 today와

 

굉장히 기뻤던 피드백과 두 개의 방명록이 쓰여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내 글이 마음에 든다는 것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 염세주의가 쇼펜하우어에 이르렀던 최근 두 개의 글에 대한 좋은 지적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균형을 잡기 위한 흔들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결국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자며 운명론을 깔보고 얼마나 더 나을 것이 있다고 모든 면에서 회귀주의적 해석을 들이대며 근근히 살아가는 나인데,

 

이전의 두 개의 글에서와 같이 고삐풀린 황소처럼 날뛰는 중 잠시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 한 것을 알아채고도 차라리 계속 날뛰는 것이 낫겠다라는 겁쟁이의 선택을 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 날뛰는 일이 생길 때는 다른 용기있는 누군가가 나의 머리채를 한 번 움켜줘야 '다행이다'라며 멈추게 된다.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2주 전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때 진정 나에겐 아무도, 가족마저 등을 돌리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을 때에도 종국엔 소통을 감행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같거나 비슷한 유인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 간에도 소통의 문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일치하지 않거나 상충되는 유인을 가진 당사자 사이에는 오죽하겠는가.

 

http://www.youtube.com/watch?v=RpjHSiQLPmA

 

고 박용하씨에 대한 글과 하얀리본에 대한 감상을 다시 보는 것은 모텔을 나올 때 '하늘을 날았던 기억의 자욱(10cm 새벽 4시의 가사 인용)'을 보는 것 보다도 훨씬 부끄럽지만 그대로 남겨 두기로 했다.

 

jk의 지적대로,

 

'이런 것도 모르냐 멍청한 새끼 꺼져' 이거나

'나 혼자 있고 싶으니 다들 나가 주세요' 이었을 텐데,

 

돌아보면 둘 다 였던것 같다.

앞의 문장의 목적어가 뒤의 문장의 '다들'이 되면 '이런 것 마저 이해해 줄 수 있으시면 나랑 같이 방에 남아주세요'가 될테니까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소통이 결여 되어 있었다.

당장 진보저널만 뒤져 보아도 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사람들이 널려 있고, 영화저널엔 깊이 있으면서도 친절한 리뷰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결여된 소통은 내가 단행본을 손에서 놓자마자 얼마지나지 않아 일어났고, 책이든 잡지든 읽지 않는 핑계를 난 공부에 대한 효율을 높인다는 일로 생각 했고, 비판 받는 많은 현대인들 처럼 책읽을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이렇게 해서 무언가를 읽어야 할 '직접적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지금까지는 의무감에서 친구가 추천하니까 똑똑해 보이려고 책을 읽은 것이 대부분이고 몇 안되는 순수한 동기에서 잡은 책은 심리학 서적 뿐인 듯하다.

 

책을 읽는 것은 참 귀찮다. 단행본을 가방에 넣을 때는 전공서적보다 1/3쯤은 가벼운 그 놈이 왜 그렇게 무거워 보이는 건지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좋은 책일 수록 (예외는 있다) 읽으면 잠이 온다. 침대 맡에는 그런 연유로 3년간 100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책이 있고, 지금은 잠이 안올 때 수면제로 쓴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말하는 편을 좋아하나, 듣기가 안되는 상황에서 말하기만 하면 독재자나 다름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8월에 신림동에 간다

사기업 취직을 제외하고 어떤 시험이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이 '소통의 결여'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확실히 신림동의 높은 성범죄율과 사그라 들지 않는 간접 성매매 수요가 거기서 비롯 된다고 생각한다. 다행이도 이 문제를 알게 되어서 기존에 생각했듯 토요일엔 무한도전, 일요일엔 뜨거운 형제들에 기대어 평일에 높은 텐션으로 버티자 라고 생각했던 것을 일부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수정이란, 여전히 두 개는 보되 월간 또는 주간지 정기구독과 한 달에 단행본 한권이 추가된 것 뿐.

 

 

 

원래 이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최근 글에서 내면의 분노와 염세주의를 뿜어대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든 본인의 왜곡된 불만 해소방식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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