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4일 일요일

Das Weisse Band von Michael Haneke

 

This article includes SPOILERS

 

 

독일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내 머리속엔 독일이란 국가와 그 국민에 대한 관심이 있다

 

관심은 당연히 부러운 감정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자동차와 정밀 부품 이라기보다

 

그 이면에 일본과 같이 산업기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높게 사는 그 정신이있다

 

일본 도쿄의 최대 번화가이자 명품 로드샵이 즐비한 긴자에 가면 미키모토 본사가 있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면 알만한 진주목걸이의 #1 브랜드다

 

세계 최초로 진주 양식에 성공한 코키치 미키모토의 이름으로 브랜드가 런칭되어 있고

 

일본에서 그는

 

 

진주왕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에도 대외적 성공이 저 수준은 아니더라도 장인정신을 기릴만한 생산물이 왜 없겠냐만은,

 

저러한 인정 보다는 단순 노무 숙련자를 '생활의 달인'이란 이름으로 위로하는 KBS 뿐 (KBS요즘 싫음)

 

(긴자에 본사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진주왕 기념비라는 걸 세울 수 있고 그것을 보면서

'미키모토 오오!(미키모토 왕!)' 라며 사진찍을 때 지나갔던 아저씨의 감탄 어린 한 마디가 중요한 것)

 

그런면에서 독일과 일본은 참 비슷한 느낌이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아디다스는 동명의 독일인이 시작해서 지금은 일본이 본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상공업을 동방예의지국에서 처럼 멸시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함

 

할아버지의 나라의 자본주의가 잘 물들어있는 현대에도 상공업 멸시는 여전한 게 정말 신기함

 

이창동감독은 10대 때 처음 글을 쓸 때 부터 이 글이 사회에 그 구성원인 개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고민하여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라는데,

 

공자랑 성리학 이렇게 오래가는 걸 보면 사상가들은 자기반성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 얘기가 삼천포

 

다시 돌아와서 내가 보기에 독일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간단히 나열하여 보면

 

똑같이 정치적으로 사상 생산했지만, 참 비교되는 공자랑 헤겔 그 외 다수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계보를 잇는 철학들, (이거 한국이 동양철학에 기여한 바와 비교하는 것임)

두 말할 필요없는 세계 최고의 맥주,

한국인으로서 생각하건대 말도 안되는 수준의 공직 청렴도,

호불호 갈리겠지만, 초민주적인 교육제도

카셀 도큐멘타, 바우하우스,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등 지방마다 높은 수준의 미술관이 있는것

예술은 돈있어야 한다 치더라도 Hans Haacke와 같은 할 말 하는 예술가 있는 것

한스하케가 있다면 동시대 우리나라엔 위대한 윤효중님이 있겠네(sarcasm)

 

뭐 완전 독일 빠구만

이라고 해도 뭐 그른말은 아닌데,

 

재밌는 건 이와 동시에

국기에도 기독교이념이 서려 있는 독실한 기독교 국가임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온전히 파시즘에 흠뻑 국가를 담갔다는 사실이다

 

근데,

조금 짱구에 힘을 빼고 생각해 보면 다 연결되어 있거든? 우성형질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인종청소하는 거랑 강력한 군대의 계급 복종체계 그리고 (적어도 누가보기에는)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마음

 

이 세 변수 사이의 타당한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기엔 나의 인내심과 지식이 짧지만,

 

미카엘 하네케 정도면 이런걸 할 줄 아시는 거지 뭐

 

클래식의 운명을 안고 개봉 되었다느니, 미장센이 회화라니 이런건 다른 블로그에 충분히 써 있으니까

다른 얘길 좀 해볼게

일단, 초반부의 한 장면이다

 

(표면적으로는)

이야기의 장치로서 기능하는 바가 전혀 없는 이 장면이 이렇게 성의 있게 찍어진 이유를 생각 해 보자

 

아이들의 집단(이하 상승 에너지)은 이 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장센의 중간에 있는 이 5명의 여자아이와 이미 앞서 뛰어가 버린 포스터의 전형적인 게르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을 포함한 3명의 아이들

 

그리고 이들은 극중 목사의 아이들이다 (전부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네)

 

그리고 저 5명의 여자 중 가운데에 중심을 잡고 있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바로 이 상승에너지의

 

리더이다

 

 

그리고 저 소녀는 엄청난 연기력의 소유자 (Acting이 아니라 극중 Pretending)

 

거짓말을 할 때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서 참 똘망똘망한게 깨물어 주고 싶다

 

자 3:10 유마에서와 같이 혼자 온통 블랙으로 감싸고 있다

 

유마에서 러셀 크로의 costume이 그냥 단순한 서부 영화의 특성상 나쁜놈을 상징하기 위해

 

블랙이었다면, 여기서 저 소녀의 블랙은 제목인 하얀리본과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온통 블랙으로 입었던 의사의 딸과 산파를 기억하라)

 

그녀는 상승 에너지의 중심에 있다

 

근데, 재밌는건 호모사피엔스 암컷에게 땅의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의 fantasize 능력이 있다면,

 

역시 호모사피엔스 수컷에게는 소위 현대 문명사회와 조화될 수 없는 특성이 몇가지 있다

 

이것은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요컨대 생명체 본연의 특성이다

 

여기선 수컷들의 쓸데없는 것에까지 집착하여 경쟁하고 순위를 매기려는 본성이 나온다

 

상황은 그런것,

 

남자아이 세 명은 "꼴지로 도착하면 바보" 라고 말하고 온 힘을 다 해 달려나간다

 

그리고 뒤이어 그들을 원숭이라 생각하며 조롱하듯 여자아이들은 곧고 당당하게 뒤를 걸어간다

 

저런 수컷의 쓸데 없는 행위들을 조롱하듯이 일렬로 마치 marching의 느낌을 준다

 

난 웃었는데(그리고 긴장을 깨는 두 부분정도에서 웃었는데 - 이런 웃음밖엔 없다 많은 독일영화에선 -

 

뭔가 다른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클래식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듯 했다)

 

역시 또 한 번 왜 안웃는지 모르겠다

 

현실이 슬픈건가 일제가 강요했던 자조, 자기연민의 민족성이 존속하는 것인가 조소를 날리고 싶다

 

아무튼,

 

저 뛰어가는 세 명의 소년 중 한 명이 포스터에 눈물을 흘리며,

 

나치가 '卍' 완장을 달았던 바로 그 자리에 하얀 리본을 달고 있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겠다

 

 

또한 재미있었던 장면은,

 

목사의 막내 꼬마 소년이 목사의 서재를 방문한다

소년은 위압감에 쫄아 있고, 가슴에서 다친 새를 꺼내어 아버지인 목사에게

이 새를 나을 때 까지 돌봐도 되냐고 물어본다

중요한 장면이다

목사는, "나 다으면 어떻게 할 것이니?, 그 간 정들지 않을 자신있니?, 다 나으면 날려보내줄 자신 있니?"

등의 질문을 하고 책임감을 측정한다

소년은 자신있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고

이 때, 뒤늦게 목사는 "어머니에게 물어봤니?"라고 한다

소년은 "네, 아버지에게 물어보라고 했어요" 이 부분 재밌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해석이 되는데 친절해지자,

이미 책임감과 다시 그 생명을 자연으로 보낼 용기가 있느냐고 물은 다음에 어머니에게 물어봤는지

묻는다 - 지금 이 목사의 교육과 그 관념들을 둘러 싼 지도(guidance)마저 스스로 불안한 반쪽밖엔

안 되는 것이다. 나머지 반 쪽은 시대상황과 실제 극중에 표현된 현재에 비하면 형편없는 여성의 권리과는 어울리지 않게 부인에게 있는 것이다. 이후 극중에 나타난 남성/여성의 역할을 살펴보겠다.

 

그 다음, 목사는 소년으로부터 목사 자신이 키우는 새는 새장에 갇혀서 계속 살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목사는 당황하지 않고 헤겔의 변증법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 (공자는 이유가 없으니까 헤겔이 낫다고 한 거임. 내가 시대의 성현을 낫다 못하다 얘기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사람이 있을텐데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외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유일한 가정교육으로서 공자와 맹자를 읽히셨고, 중학교 때 처음 접하고 고등학교 때 변증법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읽은 헤겔 그리고 최근에 본 몇자로 나는 프레임 워크 정도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사상을 많이 아는 것의 동기가 호기심과 그 사상에 대한 열정이 그 힘이 되긴 하지만 일단, 그 사상을 상세하게 이해하였다고 해서 드는 의구심들을 무시하고서도 사상의 평가를 주관적으로만 하면 안된다 - 즉, 사상의 권위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 새는 원래부터 새장에 갇혀 살았지만, 너의 새는 자유의 맛을 본 새이지 않니. 따라서 날려보내줘야 한다."

라고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고, 소년이 새가 나을 동안 포살피는 일을 허락한다

 

이후에 상승에너지 중 한 여자아이가 목사가 키우는 새를 목사의 가위로 찔러 죽이고 그의 서재의 책상

위에 가위를 십자가 모양으로 해서 놓아둔다

목사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목사의 막내 소년이 엄청나게 귀엽깜찍한 표정으로 다 나은 새를 아버지에게

건네며, "슬프시잖아요 대체물이에요"

라고 말하자, 목사는 울먹임에 가까운 표정을 연기한다

그리고 그 다음 목자의 서재 미장센에는 다시 팔팔한 새가 새장에 갇혀 '잘'살고 있다

 

영화 보면 다 아는 걸 다시쓰니까 참... 친절해지자

 

자, 이거 또 써야되나... 친절해지자

 

그러니까, 두 개의 논점이 있게 되는데

 

첫번째로 목사가 제시한, 새가 다 나으면 원래의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날려보내줘야 한다는 근거와

두 번째로는 날려보낸다는 조건부로 소년이 새를 돌보기를 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새를 받아 다시 새장에서 키우는 것

 

첫 번째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원래(originally)다.

전제는 원래 새장에 갇혀 살았으니까 자유의 맛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참 원래라는 말을 잘 쓰는데, 단어의 의미상 원래라는 단어를 쓰려면

부존재에서 존재로 바뀌는 시점에서 있던 상태를 말할 때만 써야한다

많은 멍청이들이 그냥 원래 원래 하는데

 

엄밀히 말해보자 새가 원래 자유의 맛을 모르려면,

논의의 편의를 위해 새의 자유란 것을 요컨대 비행이라 하고, 존재가 되는 시점을 알에서 나오는 시각이라 하자 (새장 안 에서 몇 센티미터의 비행은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새장안에 있었고, 따라서 날아 본 경험 자체가 없어야 원래 자유를 모르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목사가 처음에 키웠던 새가 새장 안에서 태어났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새의 부모가 알을 새장에 낳을 수 밖에 없다.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부화기는 개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알의 형태로 목사가 새장에 옮겼다면 알이 부화될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쓴 이야기니까 이 현실적 문제를 별론으로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물이 기본적으로 전 세대로부터 받은 융에 따르면 원형 또는 유전형질마저 부정할 순 없다 진화론을 따르더라도 그 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그 모양이 현 세대에서 생존에 최적화된 형태이므로 새는 스스로 날개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내키지 않지만 논의의 완벽성을 위해서 창조론을 따르더라도 신이란 존재는 새가 인간을 위해 그리고 그 환경안에서 조화롭게 살아나가게 하기 위해 엄청난 정밀도로 새의 뼛속을 빈공간으로 설계해 무게를 줄이고 방광을 없애 언제든 날기 좋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분법이 실제로 가능한 부분이 거의 없는데 이건 되니까 재밌다. 창조론/진화론. 인간이 만들어졌느냐 진화했느냐? 중간이 없다. 중간 만들려면 엄청난 논리 - 적어도 성경보다 끄덕끄덕할만한 - 를 들고나와야 한다.그래서 더 치열한 논쟁(?)이 된건가 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목사가 키우는 새가 자유를 전혀 맛보지 않았다는 얘긴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다.

 

친절해지는 건 힘들어

 

잘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정하고 정리하여 업댓하겠습니다.

 

 

 

 

댓글 2개:

  1. 본문과는 별로 관련이 없겠지만...

    일단 나치즘은 파시즘(좁은 의미의 파시즘)이 아닙니다. ^^;; 권위주의적 체제를 파시즘(넓은 의미의 파시즘)이라고 부른다면, 독일만큼 권위주의에 약한 나라가 없죠. 그러므로 나치즘이라는 권위주의적 체제(파시즘)가 잘 어울리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나치'의 원어를 번역하면,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입니다. 다시 말해 이 정당은 '우파 사회주의 정당'이겠죠. '좌파 사회주의 정당'인 공산당, 노동당 등과 대비되고, 실제로 서로 적대시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전체주의'에 더 가깝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권위주의적 체제라는 점에서 공산주의도 만만치 않은데,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서로를 적대시합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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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중구 난방인 본문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적 감사합니다. 역시 쓰다보니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냥 한 데 묶여 저렇게 표현되었군요. 부연 설명도 제가 보기엔 빗나간 데가 없어 보입니다.



    제 머릿 속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이 묶인 이유는 '우파' 와 '전체주의'란 요소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자국 병사들 눈을 수술하여 전시 명중률을 높이려 했던 것도 나치의 우생학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구요.

    요컨대 누군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daft punk 처럼

    make it faster do it better make it stronger 그리고 there's no individual



    두 이데올로기 모두 당위성을 찾는 방법은 다르지만 양태는 이렇게 나타난다는 데서 이미지가 묶이는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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