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1일 토요일

눈이 오네 - 10cm

늦게 늦게 꾸물거리다 일어난 어느 날 아침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누구에게도 보일 필요없는데 힘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내며

 

"우리 보다는 조금 어린 감성이네"

 

라는 말을 내뱉어 버렸다

 

인정하기 싫었던것 같다

 

나는 아주 바람직한 어쩌면 너무 교과서 같아 더 쉽게 흔하디 흔한 사랑얘기로 들릴지 모르는

 

첫사랑을 경험했고 이제는 그 일이 충분한 절박함 아픔과 반성들을 지나 온전히 나는 성숙했으며

 

지금의 나는 첫사랑이 있기 전의 나와는 전혀다른 또는 차원이다른 어른 스러운

 

더 사랑을 잘 할줄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처한다

 

누구에게나 자랑인듯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내가 사랑을 더 잘하게 되었다고 하는 근거는

 

여성을 더 잘 유혹하는 법 그리고

 

덜 상처받는 법,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둘 뿐인것 같다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이 정말 그렇게 마뀌었는지는 미지수이다

 

정작 남들이 보는 나는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이 맞다고 하더라도

 

처음 것은 나를 보여주는 일이라기보다는 연기를 하는 것이고

 

나중의 것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더 상처주는 일이다

 

 

 

 

꽤 일찍부터 로맨틱 코미디 혹은 로맨틱 드라마 영화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얀 눈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도서 대출 카드와 함께 마음도 뒤집어

 

약간의 호흡곤란마저 일으켰던 러브레터는

 

두번 째 볼 때 부터는 한 조각 남은 피자를 식었을 때

 

맛없을 걸 걱정해 억지로 입에 밀어넣는 것 만큼 아무느낌이 없었다

 

이터널 선샤인은 끝 부분에 Okay, Okay 대사만으로

 

3번째 보아도 여전히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지만 4번째로 본다면 어떨지 장담할 수 없다

 

 

 

 

몇 개월 전이었나.  오래된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햇살이 친절하게 따듯했던 오월의 어느 맑은 날,

 

그녀와 나는 학교 광장을 걷고 있고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있지만

 

고개를 숙이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것 처럼 송아지의 눈망울을 하고 있다

 

나는 능숙한 연기로 눈빛 하나 바꾸지않고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지만

 

마음은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서 죽을 지경이다

 

그녀의 생일

 

우린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고 정오에 모텔을 나왔다

 

장난을 치고 싶었다. 어젯밤 사실은 콘돔을 쓰지 않았다 했다.

 

이젠 됐다싶어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말 울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날 잡고 흔들고 때리고 발로 찬다. 맞는게 즐겁다.

 

 

 

 

이 기억이 스스로 튀어나와 머릿속을 맴돌다가

 

별안간 숨이 막혀 가슴을 쥐고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을 짚고 웅크려 움직이지 못한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아팠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정상으로 돌아오질 않는다

 

기억을 더듬는걸 멈출 수 없었고 그럴 수록 호흡곤란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십 분정도를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눈이 오네' 보다 조금만 더 밝은 어조의 '새벽 4시'를 백 번도 넘게 들었다

 

그렇게 아팠던 것이 다시는 없을 일에 대한 갈망을 죽이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Time of Reflection

그 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 공간을 살피기를 스스로 거부했다

 

두려움으로부터 헤쳐나와서 잠시 들렀을 때에는 부끄럼을 더 하게 하는 자그마치 10이 넘는 today와

 

굉장히 기뻤던 피드백과 두 개의 방명록이 쓰여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내 글이 마음에 든다는 것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 염세주의가 쇼펜하우어에 이르렀던 최근 두 개의 글에 대한 좋은 지적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균형을 잡기 위한 흔들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결국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자며 운명론을 깔보고 얼마나 더 나을 것이 있다고 모든 면에서 회귀주의적 해석을 들이대며 근근히 살아가는 나인데,

 

이전의 두 개의 글에서와 같이 고삐풀린 황소처럼 날뛰는 중 잠시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 한 것을 알아채고도 차라리 계속 날뛰는 것이 낫겠다라는 겁쟁이의 선택을 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 날뛰는 일이 생길 때는 다른 용기있는 누군가가 나의 머리채를 한 번 움켜줘야 '다행이다'라며 멈추게 된다.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2주 전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때 진정 나에겐 아무도, 가족마저 등을 돌리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을 때에도 종국엔 소통을 감행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같거나 비슷한 유인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 간에도 소통의 문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일치하지 않거나 상충되는 유인을 가진 당사자 사이에는 오죽하겠는가.

 

http://www.youtube.com/watch?v=RpjHSiQLPmA

 

고 박용하씨에 대한 글과 하얀리본에 대한 감상을 다시 보는 것은 모텔을 나올 때 '하늘을 날았던 기억의 자욱(10cm 새벽 4시의 가사 인용)'을 보는 것 보다도 훨씬 부끄럽지만 그대로 남겨 두기로 했다.

 

jk의 지적대로,

 

'이런 것도 모르냐 멍청한 새끼 꺼져' 이거나

'나 혼자 있고 싶으니 다들 나가 주세요' 이었을 텐데,

 

돌아보면 둘 다 였던것 같다.

앞의 문장의 목적어가 뒤의 문장의 '다들'이 되면 '이런 것 마저 이해해 줄 수 있으시면 나랑 같이 방에 남아주세요'가 될테니까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소통이 결여 되어 있었다.

당장 진보저널만 뒤져 보아도 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사람들이 널려 있고, 영화저널엔 깊이 있으면서도 친절한 리뷰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결여된 소통은 내가 단행본을 손에서 놓자마자 얼마지나지 않아 일어났고, 책이든 잡지든 읽지 않는 핑계를 난 공부에 대한 효율을 높인다는 일로 생각 했고, 비판 받는 많은 현대인들 처럼 책읽을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이렇게 해서 무언가를 읽어야 할 '직접적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지금까지는 의무감에서 친구가 추천하니까 똑똑해 보이려고 책을 읽은 것이 대부분이고 몇 안되는 순수한 동기에서 잡은 책은 심리학 서적 뿐인 듯하다.

 

책을 읽는 것은 참 귀찮다. 단행본을 가방에 넣을 때는 전공서적보다 1/3쯤은 가벼운 그 놈이 왜 그렇게 무거워 보이는 건지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좋은 책일 수록 (예외는 있다) 읽으면 잠이 온다. 침대 맡에는 그런 연유로 3년간 100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책이 있고, 지금은 잠이 안올 때 수면제로 쓴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말하는 편을 좋아하나, 듣기가 안되는 상황에서 말하기만 하면 독재자나 다름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8월에 신림동에 간다

사기업 취직을 제외하고 어떤 시험이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이 '소통의 결여'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확실히 신림동의 높은 성범죄율과 사그라 들지 않는 간접 성매매 수요가 거기서 비롯 된다고 생각한다. 다행이도 이 문제를 알게 되어서 기존에 생각했듯 토요일엔 무한도전, 일요일엔 뜨거운 형제들에 기대어 평일에 높은 텐션으로 버티자 라고 생각했던 것을 일부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수정이란, 여전히 두 개는 보되 월간 또는 주간지 정기구독과 한 달에 단행본 한권이 추가된 것 뿐.

 

 

 

원래 이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최근 글에서 내면의 분노와 염세주의를 뿜어대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든 본인의 왜곡된 불만 해소방식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2010년 7월 4일 일요일

Das Weisse Band von Michael Haneke

 

This article includes SPOILERS

 

 

독일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내 머리속엔 독일이란 국가와 그 국민에 대한 관심이 있다

 

관심은 당연히 부러운 감정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자동차와 정밀 부품 이라기보다

 

그 이면에 일본과 같이 산업기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높게 사는 그 정신이있다

 

일본 도쿄의 최대 번화가이자 명품 로드샵이 즐비한 긴자에 가면 미키모토 본사가 있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면 알만한 진주목걸이의 #1 브랜드다

 

세계 최초로 진주 양식에 성공한 코키치 미키모토의 이름으로 브랜드가 런칭되어 있고

 

일본에서 그는

 

 

진주왕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에도 대외적 성공이 저 수준은 아니더라도 장인정신을 기릴만한 생산물이 왜 없겠냐만은,

 

저러한 인정 보다는 단순 노무 숙련자를 '생활의 달인'이란 이름으로 위로하는 KBS 뿐 (KBS요즘 싫음)

 

(긴자에 본사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진주왕 기념비라는 걸 세울 수 있고 그것을 보면서

'미키모토 오오!(미키모토 왕!)' 라며 사진찍을 때 지나갔던 아저씨의 감탄 어린 한 마디가 중요한 것)

 

그런면에서 독일과 일본은 참 비슷한 느낌이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아디다스는 동명의 독일인이 시작해서 지금은 일본이 본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상공업을 동방예의지국에서 처럼 멸시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함

 

할아버지의 나라의 자본주의가 잘 물들어있는 현대에도 상공업 멸시는 여전한 게 정말 신기함

 

이창동감독은 10대 때 처음 글을 쓸 때 부터 이 글이 사회에 그 구성원인 개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고민하여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라는데,

 

공자랑 성리학 이렇게 오래가는 걸 보면 사상가들은 자기반성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 얘기가 삼천포

 

다시 돌아와서 내가 보기에 독일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간단히 나열하여 보면

 

똑같이 정치적으로 사상 생산했지만, 참 비교되는 공자랑 헤겔 그 외 다수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계보를 잇는 철학들, (이거 한국이 동양철학에 기여한 바와 비교하는 것임)

두 말할 필요없는 세계 최고의 맥주,

한국인으로서 생각하건대 말도 안되는 수준의 공직 청렴도,

호불호 갈리겠지만, 초민주적인 교육제도

카셀 도큐멘타, 바우하우스,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등 지방마다 높은 수준의 미술관이 있는것

예술은 돈있어야 한다 치더라도 Hans Haacke와 같은 할 말 하는 예술가 있는 것

한스하케가 있다면 동시대 우리나라엔 위대한 윤효중님이 있겠네(sarcasm)

 

뭐 완전 독일 빠구만

이라고 해도 뭐 그른말은 아닌데,

 

재밌는 건 이와 동시에

국기에도 기독교이념이 서려 있는 독실한 기독교 국가임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온전히 파시즘에 흠뻑 국가를 담갔다는 사실이다

 

근데,

조금 짱구에 힘을 빼고 생각해 보면 다 연결되어 있거든? 우성형질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인종청소하는 거랑 강력한 군대의 계급 복종체계 그리고 (적어도 누가보기에는)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마음

 

이 세 변수 사이의 타당한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기엔 나의 인내심과 지식이 짧지만,

 

미카엘 하네케 정도면 이런걸 할 줄 아시는 거지 뭐

 

클래식의 운명을 안고 개봉 되었다느니, 미장센이 회화라니 이런건 다른 블로그에 충분히 써 있으니까

다른 얘길 좀 해볼게

일단, 초반부의 한 장면이다

 

(표면적으로는)

이야기의 장치로서 기능하는 바가 전혀 없는 이 장면이 이렇게 성의 있게 찍어진 이유를 생각 해 보자

 

아이들의 집단(이하 상승 에너지)은 이 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장센의 중간에 있는 이 5명의 여자아이와 이미 앞서 뛰어가 버린 포스터의 전형적인 게르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을 포함한 3명의 아이들

 

그리고 이들은 극중 목사의 아이들이다 (전부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네)

 

그리고 저 5명의 여자 중 가운데에 중심을 잡고 있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바로 이 상승에너지의

 

리더이다

 

 

그리고 저 소녀는 엄청난 연기력의 소유자 (Acting이 아니라 극중 Pretending)

 

거짓말을 할 때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서 참 똘망똘망한게 깨물어 주고 싶다

 

자 3:10 유마에서와 같이 혼자 온통 블랙으로 감싸고 있다

 

유마에서 러셀 크로의 costume이 그냥 단순한 서부 영화의 특성상 나쁜놈을 상징하기 위해

 

블랙이었다면, 여기서 저 소녀의 블랙은 제목인 하얀리본과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온통 블랙으로 입었던 의사의 딸과 산파를 기억하라)

 

그녀는 상승 에너지의 중심에 있다

 

근데, 재밌는건 호모사피엔스 암컷에게 땅의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의 fantasize 능력이 있다면,

 

역시 호모사피엔스 수컷에게는 소위 현대 문명사회와 조화될 수 없는 특성이 몇가지 있다

 

이것은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요컨대 생명체 본연의 특성이다

 

여기선 수컷들의 쓸데없는 것에까지 집착하여 경쟁하고 순위를 매기려는 본성이 나온다

 

상황은 그런것,

 

남자아이 세 명은 "꼴지로 도착하면 바보" 라고 말하고 온 힘을 다 해 달려나간다

 

그리고 뒤이어 그들을 원숭이라 생각하며 조롱하듯 여자아이들은 곧고 당당하게 뒤를 걸어간다

 

저런 수컷의 쓸데 없는 행위들을 조롱하듯이 일렬로 마치 marching의 느낌을 준다

 

난 웃었는데(그리고 긴장을 깨는 두 부분정도에서 웃었는데 - 이런 웃음밖엔 없다 많은 독일영화에선 -

 

뭔가 다른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클래식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듯 했다)

 

역시 또 한 번 왜 안웃는지 모르겠다

 

현실이 슬픈건가 일제가 강요했던 자조, 자기연민의 민족성이 존속하는 것인가 조소를 날리고 싶다

 

아무튼,

 

저 뛰어가는 세 명의 소년 중 한 명이 포스터에 눈물을 흘리며,

 

나치가 '卍' 완장을 달았던 바로 그 자리에 하얀 리본을 달고 있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겠다

 

 

또한 재미있었던 장면은,

 

목사의 막내 꼬마 소년이 목사의 서재를 방문한다

소년은 위압감에 쫄아 있고, 가슴에서 다친 새를 꺼내어 아버지인 목사에게

이 새를 나을 때 까지 돌봐도 되냐고 물어본다

중요한 장면이다

목사는, "나 다으면 어떻게 할 것이니?, 그 간 정들지 않을 자신있니?, 다 나으면 날려보내줄 자신 있니?"

등의 질문을 하고 책임감을 측정한다

소년은 자신있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고

이 때, 뒤늦게 목사는 "어머니에게 물어봤니?"라고 한다

소년은 "네, 아버지에게 물어보라고 했어요" 이 부분 재밌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해석이 되는데 친절해지자,

이미 책임감과 다시 그 생명을 자연으로 보낼 용기가 있느냐고 물은 다음에 어머니에게 물어봤는지

묻는다 - 지금 이 목사의 교육과 그 관념들을 둘러 싼 지도(guidance)마저 스스로 불안한 반쪽밖엔

안 되는 것이다. 나머지 반 쪽은 시대상황과 실제 극중에 표현된 현재에 비하면 형편없는 여성의 권리과는 어울리지 않게 부인에게 있는 것이다. 이후 극중에 나타난 남성/여성의 역할을 살펴보겠다.

 

그 다음, 목사는 소년으로부터 목사 자신이 키우는 새는 새장에 갇혀서 계속 살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목사는 당황하지 않고 헤겔의 변증법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 (공자는 이유가 없으니까 헤겔이 낫다고 한 거임. 내가 시대의 성현을 낫다 못하다 얘기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사람이 있을텐데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외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유일한 가정교육으로서 공자와 맹자를 읽히셨고, 중학교 때 처음 접하고 고등학교 때 변증법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읽은 헤겔 그리고 최근에 본 몇자로 나는 프레임 워크 정도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사상을 많이 아는 것의 동기가 호기심과 그 사상에 대한 열정이 그 힘이 되긴 하지만 일단, 그 사상을 상세하게 이해하였다고 해서 드는 의구심들을 무시하고서도 사상의 평가를 주관적으로만 하면 안된다 - 즉, 사상의 권위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 새는 원래부터 새장에 갇혀 살았지만, 너의 새는 자유의 맛을 본 새이지 않니. 따라서 날려보내줘야 한다."

라고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고, 소년이 새가 나을 동안 포살피는 일을 허락한다

 

이후에 상승에너지 중 한 여자아이가 목사가 키우는 새를 목사의 가위로 찔러 죽이고 그의 서재의 책상

위에 가위를 십자가 모양으로 해서 놓아둔다

목사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목사의 막내 소년이 엄청나게 귀엽깜찍한 표정으로 다 나은 새를 아버지에게

건네며, "슬프시잖아요 대체물이에요"

라고 말하자, 목사는 울먹임에 가까운 표정을 연기한다

그리고 그 다음 목자의 서재 미장센에는 다시 팔팔한 새가 새장에 갇혀 '잘'살고 있다

 

영화 보면 다 아는 걸 다시쓰니까 참... 친절해지자

 

자, 이거 또 써야되나... 친절해지자

 

그러니까, 두 개의 논점이 있게 되는데

 

첫번째로 목사가 제시한, 새가 다 나으면 원래의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날려보내줘야 한다는 근거와

두 번째로는 날려보낸다는 조건부로 소년이 새를 돌보기를 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새를 받아 다시 새장에서 키우는 것

 

첫 번째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원래(originally)다.

전제는 원래 새장에 갇혀 살았으니까 자유의 맛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참 원래라는 말을 잘 쓰는데, 단어의 의미상 원래라는 단어를 쓰려면

부존재에서 존재로 바뀌는 시점에서 있던 상태를 말할 때만 써야한다

많은 멍청이들이 그냥 원래 원래 하는데

 

엄밀히 말해보자 새가 원래 자유의 맛을 모르려면,

논의의 편의를 위해 새의 자유란 것을 요컨대 비행이라 하고, 존재가 되는 시점을 알에서 나오는 시각이라 하자 (새장 안 에서 몇 센티미터의 비행은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새장안에 있었고, 따라서 날아 본 경험 자체가 없어야 원래 자유를 모르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목사가 처음에 키웠던 새가 새장 안에서 태어났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새의 부모가 알을 새장에 낳을 수 밖에 없다.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부화기는 개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알의 형태로 목사가 새장에 옮겼다면 알이 부화될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쓴 이야기니까 이 현실적 문제를 별론으로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물이 기본적으로 전 세대로부터 받은 융에 따르면 원형 또는 유전형질마저 부정할 순 없다 진화론을 따르더라도 그 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그 모양이 현 세대에서 생존에 최적화된 형태이므로 새는 스스로 날개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내키지 않지만 논의의 완벽성을 위해서 창조론을 따르더라도 신이란 존재는 새가 인간을 위해 그리고 그 환경안에서 조화롭게 살아나가게 하기 위해 엄청난 정밀도로 새의 뼛속을 빈공간으로 설계해 무게를 줄이고 방광을 없애 언제든 날기 좋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분법이 실제로 가능한 부분이 거의 없는데 이건 되니까 재밌다. 창조론/진화론. 인간이 만들어졌느냐 진화했느냐? 중간이 없다. 중간 만들려면 엄청난 논리 - 적어도 성경보다 끄덕끄덕할만한 - 를 들고나와야 한다.그래서 더 치열한 논쟁(?)이 된건가 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목사가 키우는 새가 자유를 전혀 맛보지 않았다는 얘긴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다.

 

친절해지는 건 힘들어

 

잘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정하고 정리하여 업댓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