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러한 실력을 가진 보컬들을 자신의 콘서트 이상으로 끌어올려 나온 무대에 대해서
귀하다 생각했고, 간절히 청중평가단이 되고 싶었다. 경쟁의 힘이라면 힘이다. 그정도 까지라 생각한다. BMK, 김연우, 임재범 이 '스승급' 사람들이 합세하면서 과열이 일어났다. 욕심이 앞서고 무엇보다 꼴찌가 되기 싫어했다. 꼴찌가 좋은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난 인정 안받아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느새 체념과 자기학대가 몸에 배어있을 거다. 우리 모두가 1등이라든지 모두 함께 잘 살 순 없나란 이상적인 고민은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논리 아래 살아가는 나의 머리 속에선 점점 의미를 잃어간다. 현실에서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에는 타협한다해도 사람인격을 순위로 대체해서 모멸감을 주는 건 침팬지나 하는 행동이다. 그 모멸감이 두려워 본질을 잊는다.
몸이 아픈 가수가 나오고 지나치게 힘을 준 편곡에 낼 수 있는 창법을 모두 넣었지만 정작 곡해석은 뒷전이다. 현실 사회에서 일어나는 과열 경쟁의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났다. 눈 앞에 보이고 당장 감정을 끌어올리는 고음과 기교.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생각에 잠기기 보단 '장난아니다'란 반응이다. 노래는 놀라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악기는 연주자가 똥이 마렵든 연인과 싸웠든 간에 정확한 연주만 하면 감동을 주는데에 문제가 없지만, 언어로 인간이 하는 노래란 건 인간이 악기보다 복잡하듯 정확히 부르는것 이외의 요소들이 듣는사람에게 전해진다. 기본은 '시'이고 +음정 +감정 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음정은 문제안되는 사람들이니 시를 해석하고 느낀 감정을 생각하며 뿜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이 등식에 없는
고음과 기교는 필요이상이다.
취향이라면 대다수의 선택을 벗어난 경우가 더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청중평가단을 통계낸 결과는 곧잘 납득이 된다. 윤도현밴드는 해석을 할 수 없는 노래가 걸렸고, 박정현도 '소나기'를 작곡한 사람의 감정을 이해했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녀가 말한 '가사 안에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서 이야기란건 서사라고 생각해도 문제없는데 아무리 가사를 읽어도 서사는 아니고 소나기처럼 짧고 깊은 감정의 표현이다. 참 아쉬운 점인데 다양한 장르를 소화가능하고 쉽게 듣는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는 목소리지만, 들을 때마다 집중이 튕겨나오는 발음을 고치지 않는(또는 못하는) 점은 명백한 단점이라 생각한다. 국어에 대한 이해도 그 정도로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엔 없다.
'편히 잘 수 있는 곳'은 '편히 짤수 있는 염소(goat)'가 아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한국어란 언어도 시대에 따라 여러 변화를 겪었고 겪는 과정 중의 언어이지만, 통용되는 표준 발음이란게 있고 대표적으로는 영어와 구별되는 고유의 발음이 있는데, '대박'을 '대vack'으로 발음하고 '마음 속으로'를 '마음속으row'로 발음하는게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꼰대끼는 아니다. 모두 대단한 가수이니 곡해석을 의도적으로 경시하진 않았을 텐데, 이소라와 임재범만이 감정을 이해해서 전달했다.
윤도현이 임재범을 높은 선배로서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마다 임재범이 느리게 눈을 껌뻑이는 표정은 인상적이다. 무수한 칭찬을 들었을터이고, 그것에 비행기타는 기분도 처음에는 느꼈을 테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경솔해 졌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칭찬을 과감하게 재단하는 표정이 아닐까 한다.
김연우의 보컬을 악기에 견주자면 무슨무슨 나무로 유럽 어디의 장인이 얼마간 만들었다는 값비싼 바이올린이 떠오른다. 하지만 바이올린이다. 정확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바이올린. 그는 스스로 인생이 평탄했다고 했다. 그 말을 하기 전에도 그의 노래에서 느껴진다. 평탄하게 쌓아올린 노력. 이소라는 '눈물을 흘리며 꿈에서 깨본적이 있나요? 매일 아침 그렇게 깨어나는 사람이 진정 가수'라고 했다고 한다. 칭찬일색인 윤도현의 임재범에 대한 말들 중에도 '여러분'에서 삶이 뭍어난다는 말은 적확했다. 악기엔 없는 사람의 것이 나오는게 노래다.
이런저런 얘길 끄적대는건 이렇게 열심히 본 한국 프로그램은 없다는 것 때문이다. 투덜대도 난 또 나가수를 볼꺼고 노래를 연습할꺼다. 세상은 좋은 세상이니까. 응?